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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Oct 30. 2022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1)

Ep.1_ 사실보다 편안한 오해

돌이켜보면 엄마가 나의 연애를 눈치챈 건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새벽마다 방문을 걸어 잠근 후 몇 시간씩 통화를 하고, 도무지 집에 붙어 있지를 않고,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딸내미를 보면 그 누구라도 눈치를 챌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물었다. 너 연애해?

나는 속으로 기절할 듯 놀랐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되물었다.

“왜?”

“그냥 그런 것 같아서.”

“응. 얼마 안 됐어.”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 별 뜻 없이 물어본 거였구나. 긴장이 풀렸다.


그때 엄마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키는 커?”

엄마가 그렇게 물었던 건 본인이 키가 큰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농구선수 박수교를, 이후에는 투피엠과 현빈을 좋아했던 것으로 추측한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딸인 나도 키가 큰 남자와 연애했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내비쳐왔다.


엄마의 질문이 너무 훅 들어온 나머지,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지 못하고 아주 솔직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크지는 않고… 나랑 비슷할 걸?”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됐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말을 다 뱉은 후였다. 엄마는 놀란 것 같았다. 굳어 버린 엄마에게 무언가 해명을 하고 싶었지만….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내가 할 수 있는 해명은 없었다. 딸이 여자 친구를 만난다는 사실보다는 키가 작은 남자를 만난다는 오해가 아직은 엄마에게 편할 테니까. 나는 더 이상 우리 사이의 오해를 풀어줄 진실에 대해서는 덧붙이지 못했다. 



Ep.2_ 오해는 누가 만들까

그렇게 나는 나와 키가 비슷한 사람들과 두 번의 연애를 했다. 두 번째 연애가 끝났을 때 나는 심적으로 지쳐 있었다. 그 감정을 감당하기가 싫었고,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이별의 여파로 해이해진 정신 탓에 나는 지금으로선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남자를 만나봐야겠어. 

내가 좋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던 남자 선배가 있었다. 불편해서 거리를 두고 있던 차였는데, 나는 뭐에 씐 사람처럼 카톡 목록에서 그 선배의 이름을 찾아 메시지를 남겼다.     


남자랑 사귀는 건 여자를 사귀는 일과 아주 달랐다. 타로카드 점을 보러 가서 우정운이 아닌 애정운을 볼 수 있었고, 데이트 중에 낯선 남자들한테 헌팅을 당하는 일도 없었다. 당시 유행했던 페이스북의 ‘연애 중’ 기능도 사용해봤고, 지인들의 축복을 받았다. 파파라치를 피해 숨어서만 연애를 하다가 공개 연애를 시작한 연예인처럼, 나는 그 자유로움을 분명 즐기고 있었다.      


사건은 그 남자애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일어났다. 그 애와 술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내게 ‘남자를 몇 번 만나봤냐’고 물어왔다. 나는 아무런 계산 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한 번도 안 만나봤어.” 걔는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내 선배이자 그의 친구인 사람을 만나서 또 술을 마셨다. 그 사람도 내게 물었다. ‘너는 연애를 몇 번 했어?’ 나는 이번에도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연애는 두 번 정도?”

내가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은 다음 날 바로 남자 선배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CC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자신이 나의 첫 번째 애인인 줄 알았던 그 남자애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너 연애 두 번이나 해봤다며? 근데 왜 나한테는 남자 만난 적 없다고 했어!”

나는 매우 곤란하면서도, 억울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충동적으로 말하고 말았다.

“남자 만난 적 없거든? 여자 친구 만났거든?”

정적이 흘렀다. 

걔는 그게 뭔 소리냐고 몇 차례나 되물었고 나는 계속 설명했다. 어느 순간 내 말을 이해한 걔는 머리를 쥐어뜯더니, 담배를 물었다. 연달아 담배 두 대를 피우고, 지져 끈 후,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면 너… 여자랑 잤어?”     


이번에는 내 말문이 막혔다. 걔와 내 사이에는 한동안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수년이 흘렀지만, 수많은 이성애자들이 자신의 애인이 최소 양성애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게 나는 여전히 신기하다.



Ep.3_ 오해의 순기능

새벽 한 시경, 회식 자리는 여전히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업무 얘기를 나누던 회식 초반을 지나, 우리는 어느새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PD는 내게 물었다. 

“작가님은 결혼 생각 있어요?”

음…. ‘결혼이 내 성향에 맞지 않는 데다가 애당초 하고 싶어도 동성혼은 한국에서 법제화가 되지 않았으며 한편으로는 못 하게 하니까 왠지 결혼이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따라서 언젠가 동성혼이 법제화가 되면 한 번쯤 해볼 것 같기도 하다’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스쳤지만, 나는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딱히 없어요.”

“연애는요? 연애는 하고 있어요?”

“연애도 안 한 지 오래됐어요.”

그렇구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맥주를 홀짝였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PD가 다시 한번 물었다.


“작가님, 소개팅 시켜줄까요?”

이 순간,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나의 존엄을 지키되 거절 의사를 정확히 밝힐 수 있을 만한 대답은? 

“제 이상형이 차은우인데 괜찮을까요?” 

재기 발랄하고도 정중한 어조로 되돌아온 나의 답변에 질문을 건넨 PD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의 표정이 벙찌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몇 초 간의 정적이 흘렀고, 그다음 순간 사람들이 폭소했다. 작가님 눈이 천상계에 있었구나? 나는 흐흐 웃으며 그렇다고 맞장구쳤다.


내 발언의 여파는 회식 다음 날 사무실에서도 이어졌다. 작가님 이상형이 차은우라면서요? 진짜예요? 나는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 발언은 절대 술김에 한 농담이 아닌 진심이라고 못 박았다. 더 이상 내게 소개팅 제안은 오지 않았다. 


내가 경험했던 수차례의 실수들로 인해 어느새 내 안에는 각종 질문에 대한 나만의 처세 데이터가 쌓여 있었다. 본의 아니게 엄마를 놀라게 하고, 전 남자 친구를 자극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 회식 자리에서는 상황을 잘 모면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하지만……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면 어땠을까. 마음 한편에 이는 아쉬움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요상한 이성애자들의 세계에서 능수능란한 스파이가 된 것 같은 흥미진진함에 조금은 신나기도 했다. 



1) 이슬아, 남궁인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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