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을 졸업할 무렵이 되면 산타 할아버지에 대한 아이들의 의구심은 커지기 마련이었다. 조숙한 아이들은 이미 ‘산타 같은 건 없어’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확고히 하고, 그 가치관을 반 친구들에게 설파하기도 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마음속에 피어나는 의심을 애써 무시하며 고집스러울 만큼 산타의 존재를 믿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가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산타가 있는 걸 아직도 믿냐며 냉소적으로 구는 것이었다. 산타는 정말 없는 걸까? 나는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혼란 속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다시 돌아왔고, 엄마는 매년 그랬던 것처럼 내게 물었다.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뭐 받고 싶어?”
나는 분명 받고 싶은 선물이 있었지만, “내가 직접 산타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릴게!”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엄마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꽤 당황한 것 같았다. 엄마는 그 이후로도 몇 차례나 나를 회유하려 들었다. 왜~ 말해 봐~ 엄마도 같이 말씀드리게~
하지만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받고 싶은 선물이 뭐였는지 엄마에게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마다 눈을 감고 원하는 선물이 뭔지, 산타 할아버지에게 텔레파시를 쏠뿐이었다.
며칠이 지나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방을 스캔하니 반짝이는 포장지로 동그랗게 감싸진 무언가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에 다리를 동동거리며 포장지를 좍좍 찢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내 방으로 다가와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런데 포장지를 한 겹, 한 겹 벗겨낼 때마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어라라… 이상하다….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 아닌 것 같은데….
잠시 후 포장지를 다 벗겨낸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포장지 안에 들어 있던 것은, 8년 평생 가지고 싶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털모자였다.
줄곧 나의 반응을 살피던 엄마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러게 엄마한테 말하라고 했잖아…. 엄마가 산타 할아버지한테 전화해 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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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20년 후, 나는 근무 중인 프로그램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송 준비를 위한 자료조사를 하는데, 산타클로스는 내 예상보다 흥미로운 인간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구미가 당겼던 이야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산타의 이미지 –배불뚝이에, 빨간 옷을 입고, 장난스럽고, 흰 수염을 늘어트린 –를 창조한 건 모 콜라 회사라는 사실이었다. 당시 여름 음료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콜라를 겨울에도 많이 팔기 위해 회사는 산타를 모델로 기용했던 것이다.
콜라 회사의 사이트에서 콜라병을 든 채 웃고 있는 산타를 보니 그 미소는 여태껏 내가 알던 인자한 미소가 아니었다. 그건 자본주의 미소였다. 그 웃음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액상과당의 찝찝한 단맛이 입안에 도는 듯했다.
산타의 업무를 돕는 엘프들은 7개 국어를 할 줄 아는 능력자들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스크롤을 쭉쭉 내리니 열심히 일하는 엘프들의 이미지가 떴는데, 왜인지 그 모습에서 20대 초반에 알바를 했던 내가 겹쳐 보였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회사는 중국어나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시급을 100원 올려줬었다. 이 기회에 중국어를 조금 배워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끝내 내가 습득한 중국어는 “听不懂(팅부동, 알아들을 수 없어요)” 뿐이었지만. 7개 국어를 한다는 엘프들은 시급을 얼마 받고 일하려나,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겨보았다. 산타가 잘 챙겨줘야 할 텐데….
상념이 여기까지 흘렀을 때는 이미 사무실의 모두가 퇴근한 후였다. 나는 나의 낭만 없는 사고회로를 질책하며, 아무래도 집에 가서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를 보며 동심을 조금이나마 충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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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다가오니 온갖 온라인 쇼핑몰들이 [크리스마스] 카테고리를 개설했다. 산타 코스튬부터 캐럴이 나오는 작은 오르골까지. 과연 크리스마스는 상인들의 대축제구나, 생각하면서도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는 어드벤트 캘린더를 선물로 보냈다.
크리스마스와 산타에 대해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염세적인 마음이 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를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 내 안에 있었다. 갑자기?라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신파에 이끌리는 나의 마음을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1914년 12월 24일, 독일군과 영국군이 대치하고 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독일 장병들은 그들의 참호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조촐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리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군이 그 캐럴 소리를 듣게 되었고, 캐럴을 부른 병사에게 박수를 보냈다. 다음 날,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았을 때, 영국군과 독일군은 그날 하루 교전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도대체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이런 일까지 일어났을까.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연락 한 번 없던 인간들이 카드를 보내오고, 침엽수에 알전구를 걸고, 구세군 냄비에 동전을 넣을까.
시니컬한 태도를 유지하고 싶지만 나 역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따라 부르게 되고, 반짝이는 오너먼트를 단 거대한 트리 앞에 멈춰서 사진 한 장 남기게 된다. 작고 아름다운 물건 앞에서는, 선물을 할 사람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리고 어린 날, 산타를 기다리며 잠 못 이루던 그날의 나를. 빠지지 않고 꼭 다시금 호명하게 한다. 산타는 없다며 훼방을 놓던 친구들의 얼굴과 함께.
아이들은 자라나며 어떠한 경로로든 ‘그 산타 할아버지’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산타는 그저 아이들의 부모, 혹은 유치원 선생님, 이웃 어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아는가? 산타클로스는 실존 인물이었다는 것을. 약 3세기경,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성 니콜라스라는 성직자가 살았다. 그는 사정이 어려운 이웃의 집에 몰래 들어가, 난로 옆에 말리려고 걸어놓은 양말에 금화를 넣어놓고는 했다. 이런 성 니콜라스의 일화가 구전되면 지금의 이름, 산타클로스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혹한의 거리를 따뜻한 색감으로 물들이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불빛. 한해의 끄트머리에 일어나는 이 기분 좋은 기적을 나는 소중하게 여긴다. 결국 나는 돌고 돌아 산타를 믿는 어린이에서 산타를 믿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의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