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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Mar 07. 2023

숙직실 귀신을 찾아서

나는 일평생 가위에 눌려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나는 남들이 가위에 눌렸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해소하기 어려운 답답함을 느꼈다. 

“가위눌리는 게 어떤 느낌인데? 무슨 장면을 봤는데?”

나의 물음에 사람들은 제각각 으스스한 경험담을 꺼내놓았다.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다가 가슴이 답답한 기분에 눈을 떴는데, 귀신이 러닝머신에 걸터앉아 날 보고 있었어.” 

“작은 방에서 자다가 눈을 떴는데 천장에 붙은 귀신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어.”

“낮잠을 자다가 이상한 기분에 잠에서 깼는데 귀신이 내 목을 조르고 있었어. 피하려고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멋진 무용담 같았다. 내게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할 뿐 아니라 왠지 소외감까지 들었다. 그런 나의 모험 정신을 자극하는 공간이 나타났다.


회사의 5층 숙직실에는 귀신이 나온다고 했다. 하긴 다른 층의 숙직실에 비해 5층 숙직실은 수상한 점들이 꽤 있었다. 사시사철 건물에 난방을 해도 그 숙직실은 이상할 만큼 한기가 돌았다. 특히 겨울에는 롱패딩을 침낭처럼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담요를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덮어야 간신히 잠들 수 있을 정도였다. 가위에 잘 눌리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그곳에서는 가위눌리는 일이 빈번했다. 동료는 이 이야기를 전해주며 오싹하다는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가위눌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조심하라는 동료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렇게 나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상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모험을 하는 거야!’

5층 숙직실이라면 나도 귀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험을 떠나려면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다. 항상 8층 숙직실만 이용하던 나는 우선 5층 숙직실의 세부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칼퇴근을 하는 금요일 밤, 나는 다음 주의 업무까지 끌어와 자리에 버티고 앉았다. 시간은 느릿느릿 흘렀고 기다리던 토요일 자정이 되었다. 업무가 남은 사람들은 집에서 일을 하겠다며 막차를 타고 떠났고, 나만이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아니, 5층 전체에 남아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5층에는 정수기가 꾸르륵대는 소리, 내가 키보드를 톡톡톡 두들기는 소리만이 존재했다.


지금이야.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숙직실이 있는 5층 복도 끝을 향해 걸었다. 숙직실의 문을 열자마자 찬 기운이 훅 끼쳤다. 냉골이네, 냉골이야. 중얼거리며 잘 닫히지 않는 숙직실 문을 힘껏 닫았다. 문을 열어놓고 자면 가위에 눌리지 않는다는 (쓸데없는) 꿀팁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청개구리처럼 문을 꼼꼼하게 닫으니 3평 남짓의 숙직실에 어둠이 깔렸다. 귀신 만나기 딱 좋은 조도였다. 

2층 침대의 아래 칸에 몸을 누였다. 위칸의 바닥 면이 눈앞에 너무 가깝게 보였다. 오늘 정말 가위에 눌릴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렸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혹 끼쳤다. 그게 한기 때문인지 설렘 때문인지 헷갈렸다. 


눈을 떴을 때는 어이없을 정도로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침대의 좁은 칸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기지개를 켜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침 7시였다. 가만있으니 창밖에서 새소리도 들려왔다. 이렇게 푹 잔 게 얼마 만이지? 질적으로 완벽한 수면이었다. 순간 내가 숙직실에서 잔 목적을 잊을 뻔한 정도였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엄마에게 카톡 메시지가 한 개 와 있었다.

[애가 없네.]

아침마다 내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 엄마가, 내가 아침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상태일 때마다 보내는 메시지였다. 

흠…. 무어라 답장해야 할지 곤란했다. ‘그게 내가 일은 빨리 끝났는데, 가위에 눌려보고 싶어서 회사에서 혼자 자봤어.’라고 답장하는 건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핀잔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금방 들어가겠다고 간단히 카톡을 남기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나는 가위눌리려고 여기서 잤던 거였지. 결연했던 어젯밤의 나를 비웃듯 몸은 날아갈 듯 가뿐하고 상쾌했다.

그 이후로 수차례 5층 숙직실에서 잠을 청했지만 가위를 눌리기는커녕 집에서보다 푹 잠들 뿐이었다. 연이은 실패를 겪으며, 내 앞에만 나타나지 않는 귀신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날로 커져갔다. 


귀신의 정체가 너무 궁금했다. 누구신데 왜 방송국에 자리를 잡은 건지, 왜 많고 많은 층 중에 5층인 건지, 왜 숙직실인 건지, 왜 떠나지 않고 지박령이 되었는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혼자 생각을 하다가 감당을 하지 못해 동료들에게 묻기도 했다. 동료들은 각자 골똘히 생각해 보더니 이런저런 답변들을 내놓았다. 

“죽은 제작진이 아직 떠돌고 있나?”

“단명한 아이돌 팬인가?”

“한참 <전설의 고향> 할 때 붙어온 거 아닐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숙직실 귀신은 죽은 제작진이 되었다가, 단명한 아이돌 팬이 되었다가, <전설의 고향> 캐릭터가 되었다가 했다. 


요즘도 나는 회사에서 쪽잠을 자야 할 때마다 담요를 칭칭 두르고 5층 숙직실을 찾는다. 정체 모를 그를 오늘은 조우할 수 있을까. 작은 숙직실 한켠에 갇혀버린 그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품은 채 나는 이불을 덮고 눈을 감는다. 만난 적도 없이 벌써 알 수 없는 친밀감이 쌓인 그와의 첫 만남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허무맹랑하고도 진지한 마음으로 자신을 기다려온 나에게 그는 어떤 내게 말을 걸어올까, 어떤 사연을 들려줄까. 작은 기대감을 품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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