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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봉조사 이상은 Feb 28. 2024

아내가 신고한다고 한다......

몰디브에서 모히또의 추억은 기억하시나요?

 신고할 거야, 어디로 할까.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전에도 약간 이런 식이었다. 이 말의 촉발은 내가 인권위원회 위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낸 데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직업적인 특성상 지역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직함을 맡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의적인 지원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지역에서의 역할이나 활동이 쌓임으로써 주변의 추천과 타이밍에 의해 자연히 역할을 맡게 된 경우들이다.


 내가 예상을 한 이유는 작년 이맘때쯤 민주시민 위원을 맡을 때였다. 이 것도 위와 같은 이유다. 그때 와이프는 어이없다는 듯 콧 웃음을 치더니, "이 동네 정말 안 되겠네!"라고 하면서 가만있지 않겠다고 했다... 농담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와이프의 발언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가정에서 민주주의가 안된다는 사례가 이런 것이었는가 싶다...... 나도 찔리는 게(?) 있어서 막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만은 아니라니까...


 집 밖에서는 소양과 감수성을 가진 인권위원이자, 민주주의 덕망을 갖춘 시민이지만, 가정에서의 현실은 이에 반하는 반 인권, 민주적인 가장인가 보다... 나는 어쩌다 이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 되었는가. 밤에 곰곰이 내 방 서재에 앉아 보이지도 않는 밤하늘의 별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2016년 신혼여행의 추억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신혼여행은 참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결혼식이 참 힘들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신혼여행의 행복으로서 덮여 생각이 안 날 만큼에 강하게 내 인생의 페이지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몰디브를 대표하는 에메랄드 빛의 푸른 바다. 


 우리의 행복은 에메랄드처럼 계속 빛날 것 같았다. 반짝이는 초록빛깔을 본 순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새를 잊어버렸다. 우리가 이제껏 봐왔었던 바다와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이 세상이 아닌 곳을 넋 놓고 바라보며, 신혼여행의 기대감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앞으로 미래의 우리 행복도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착각했었던 것 같다.


에메랄드 바다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우리의 행복은 올인크루시브 서비스로 나오는 몰디브의 모히또처럼 무제한으로 제공될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 먹어도 거부감이 없는 맛의 음료와 음식들이었다. 바다의 바람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인도양이 더울 법도 한데, 바다 짠 내가 날 법도 한데, 전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살결을 상쾌하게 해 줬던 해변과 수영장에서의 시간들이 생각난다. 고막을 살짝살짝 건드려주는 트럼펫 재즈음악과 함께하는 바다와 수영장의 파도는 너무 완벽히 우리와 어우러졌다. 타이밍도 좋게 태양은 바다에 부서져서 더욱 주홍색으로 빛을 발하며 사라져 갔다.


몰디브의 모히또와 숙소, 수영장 모든 것이 완벽한 기억.


 우리의 행복은 몰디브의 밤에 빛나는 처럼 낭만적이고, 쏟아질 듯 넘쳐흐를 것으로 믿었다. 밤의 별을 온몸으로 맞기 위해 아예 데크에 벌렁 누웠다. 혹시 별이 나한테 떨어지면 좋겠다 싶었다. 칠흑 같은 밤이 무서울 법도 한데, 별빛과 몰디브의 분위기에 취해 서로의 함께 있기 때문에 두려울 것 없이,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 저 먼 하늘의 별 같이 수많은 행복만이 그려졌다.   


카메라로는 담길 수 없는 하늘과 마지막 밤


 우리는 이 행복을 영원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돌아오는 날 마지막 리조트 수영장에서 이제는 내 소울음악 같은 비치 재즈 음악을 들으며 마셨던 음료... 맛보다 더 강한 짭조름한 눈물이 주책없이 흘러나와 선글라스로 가리며, 돌아갈 경비행기를 기다렸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 슬픔으로 남아있다. 앞으로 다시는 밟지 못할 저 해변을 바라보면서...


떠나는 마지막 날의 풍경


공항으로 가는 하늘에서 아내가 물었다.


"우리가 다시 쿠라마티*를 올 수 있을까?" [아내]

(*몰디브에서 묶었던 리조트 이름이다) 


"아마 어렵지 않을까 너무 비싸고..." [나]


"지구 온난화로 이제 2050년 내에 몰디브가 물에 잠긴데..." [아내]


"... 그래? 그럼 잠기기 전에 오자. 아마 환갑 때는 다행히 2050년 전이니 그때까지는 올 수 있지 않을까?" [나]


그 먼 훗날의 미래까지 생각하며, 행복의 시간을 약속했던 그 하늘의 대화가 바로 직전처럼 떠오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실 착각을 하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잠시 잊을 만큼, 몰디브를 사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사랑에 이성도 멀어 우리의 행복도 그렇게 낭만적이고 오래오래 행복할 것이라고 믿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몰디브가 아니다. 향긋한 모히또나, 쏟아지는 별은 더더욱 아니었다.


 와이프는 요즘 입버릇처럼 항상 결혼을 후회한다고 한다. 혼자가 답이었다고... 그때의 신혼여행과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일상에 바쁘고, 육아에 치이고, 주변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핑계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너무나도 극명하게 행복했던 신혼여행의 기억이 나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하면서 강한 기억으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내에게...

일단 지금은 나에 대한 신고는 나중에 해줬으면 좋겠어. 

그 신고를 받기 위해 지금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나부터 아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아.


내가 조금 더 잘할 테니,


정말 먼 훗날 나의 '사망신고'를 해줬으면 좋겠어,


몰디브도 다시 가자,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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