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죽은 거 알지? 복지현장의 재위탁에 대한 새로운 대안은 없는가.
신에게는 거북선이 있습니다!
응(?) 갑자기 생긴 거지만요...
"공무원이세요?"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하면 어김없이 듣는 질문이다. 그러면 아니라고 했다가, 맞다고 했다가... 반반이라고 했다가 답변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아니다.' 그런데 약간 반반일 수는 있는 게, 거의 대부분의 급여를 나라에서 받고,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부분은 공무원의 특성과 겹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이런 기묘한 구조가 된 것은 우리나라의 복지현장에 위탁이라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공공에서 다 포용하기 어려운 복지행정에 있어서, 민간에 위탁을 주어 운영하게 하는 형태로 대부분의 복지기관들이 해당된다. 물론 위탁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와 공포(?)는 약 5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복지기관들의 재 위탁이라는 시험대는 어김없이 복지현장에 근무하는 우리를 옥죄어 온다. 이것도 예전에는 3년인 경우가 많았는데, 너무 잦다는 복지현장의 의견을 받아 최근에는 대부분 5년으로 하고 있다.
재위탁을 준비하면 그때부터는 거의 준비태세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준비태세'는 거의 경악스러운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전투를 준비하는 상황, 훈련을 뜻하는 말로, 실제 상황이 걸렸을 때를 대비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전준태 혹은 준비태세로 줄여서 많이 부른다. 일단 이 발동이 걸리면 정말 우왕좌왕 혼돈의 카오스이다. 재위탁은 딱 '사회복지현장의 준비태세'다.
복지관 미션, 비전 재수립부터 시작해서, 사업계획, 실적 취합, 법인자료 요청 등 등 온갖 것들을 논의하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소위 과거에는 업무시간에는 여력이 나지 않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퇴근 이후에 준비 회의를 하는데 막차 끊길 때까지, 새벽까지 열심히 방향을 수립한다. 당연히 무보수다. 열정페이였다. 그때 열정페이를 하도 받아서 지금 내가 열정맨이 되었나 보다... 하... 정말 옛날 생각나네. 브런치 글에 욕해도 되나요?
지자체에 제출해야 하는 위탁 책자는 일단 비주얼이 다르다. 난 태어나서 그렇게 두꺼운 책을 처음 봤다. 요새는 좀 얇아진 것 같은데, 페이지가 1천 장이 넘는다. 메인에 뜨지 않으면 브런치 조회수 1천도 나오기 어려운데... 정말 대단하다. 일단 요구하는 서류 자체가 많다. 법인자료와 위탁할 복지기관에 대한 자료를 둘 다 내야 하기 때문에 기본량이 꽤 될 수밖에 없기는 하다.
무엇보다 많은 시간과 영혼을 잡아먹는 이유는 앞으로의 약 5년간의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1년도 어떻게 해야 하지 계획이 어려운 판에 이걸 세련되고 멋지게 보여준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뭐 기관마다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가장 어려운 포인트다. 여기에 다들 환장한다. 우리도 여기에 걸려서 매번 새벽을 넘겼다...
그래서 거북선(龜船)을 만들었다. '트렌드 노트'
그에 대한 대안으로 '트렌드 노트'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트렌드는 지역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를 토대로 욕구조사하고 기관의 방향을 수립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욕구조사가 다소 세부적이고 심도 깊은 조사라고 한다면, 이 트렌드 노트는 굉장히 새롭고 거시적인 방식이다. 일단 트렌드 키워드로 보여주기 때문에 서류의 가독성이 높다. 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는 효과가 있다.
트렌드 노트도 이용자 및 주민을 대상으로 설문한다는 점은 기존의 욕구조사 방식과는 같지만, 설문문항이 획기적으로 적다. 이미 지역에서 검증되고 알려진 지역의 추세와 트렌드를 토대로 그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검증이 되고, 다방면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트렌드 노트의 내용을 그대로 우리의 5개년 위탁 계획의 방향에 넣었다. 직원들은 큰 이득이었다. 물론 총괄 담당인 내가 제일 이득(개이득)을 봤다. 이미 검증이 되고 합의된 계획에 있어서 누구도 논란을 제시할 수 없었다. 의사결정과 선택이 빨랐으니, 거침이 없었다. 당연히 새벽은 편안하게 집에서 발 뻗고 누웠다.
이런 위탁준비와는 별도로 긍정적인 점으로서 '파급효과'를 들 수 있다. 우리가 트렌드 노트를 만들어 지역과 시에 배포했을 때 공통적인 평가는 우리 복지관이 굉장히 시 정책에 협조적이고 선도적으로 반영을 잘한다는 평가였다. 이는 우리 복지기관의 위상에 도움을 주며, 시 즉 지자체, 공공과의 관계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 부가적인 효과가 절대적이었다.
우리는 위탁을 준비할 때 매번 칼퇴까지는 아니지만, 최소 19시 전에는 퇴근을 했다.
왜 기존의 욕구조사를 고집하는가?
사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쓰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건 아집이다.
우리는 이번에 편하게 위탁을 준비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지만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물론 이 트렌드 노트만의 영향은 100프로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의 노력과 노하우, 우리 기관의 그동안의 전문성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트렌드 노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공무원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위탁을 받아야 하거든요."
전군! 출정 준비한다.
재위탁이 쳐들어왔다. 귀선(龜船)을 준비하라
아, 급 감정이입돼서... 그만... 특정 무엇에 대한 비판은 절대 아니고... 자랑입니다!
어쨌든 명량, 한산, 노량 다 좋아했지만, 역시 난 해일이 형이 제일 멋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