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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봉조사 이상은 May 25. 2024

마음은 양(量)을 천시하는 사회복지 현장에 대하여

양의 복지와 통계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하여

아니! (신성한) 사회복지 현장에서 질이 아니라, 양을 논하다니!


 정도로 대 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은연중에 그런 마음을 현장의 사회복지사들은 '아직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가치와 의미 중심의 비영리, 휴먼 서비스라는 사회복지에서 양(量, quantity)을 너무 세우는 것이 다소 세속 적여 보일 수는 있을 듯도 하다. 이와 맞물려 민간 복지현장을 관리하는 지자체(공공)의 실적의 요구라던지, 보여주기를 위한 기관장님들의 압박에 다소 반감을 가지게 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뭐 이를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양을 내세우면 (복지)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사회복지는 누가 뭐래도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이니까...


 양(量, quantity)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것은 통계(統計, statistics가 있다). 어떤 집단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양적 기술을 반영하는 숫자이며, 기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회과학 연구에서는 주로 통계의 활용이 자주 이용되고, 사회과학의 일종인 사회복지도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뭐, 현장 사회복지사가 무관심하거나 싫어하는 것과는 별도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유명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했던 이야기이다. 무슨 말이지? 싶겠지만, 기적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며, 필연성의 법칙으로서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뜻이다. 결국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신은 도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시로 주사위를 던져서 6이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산수의 수준에서 1/6(16.7%), 6번 중에 1번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해보면 어떤가? 10번을 던져도 한 번도 안 나올 수 있고(10% 미만), 의외로 한방에 딱 뜰 수도(?) 있다(100%). 사실 인생에서 통계는 맞지 않다. 세상 모든 일에 있어 반복적으로 겪는 경험의 빈도는 적다. 모든 일상이 처음 하는 새로운 것이다. 수치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럼 통계나 확률이 틀린 거 아니냐고? 당연히 틀리다(강한 부정). 하지만 당연한 전제가 있다. 경험의 빈도가 많아지면 된다. 그렇게 되면 무조건 맞다(강한 긍정).


 대수의 법칙(큰 수의 법칙): 큰 수의 법칙(큰 數의 法則, 영어: law of large numbers) 또는 대수의 법칙, 라플라스의 정리는 큰 모집단에서 무작위로 뽑은 표본의 평균이 전체 모집단의 평균과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와 확률 분야의 기본 개념이다. <위키백과>


  정규분포의 법칙을 아는가? 나도 수포자였는데,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면 짜증 나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면 숫자가 큰 세상의 모든 일은 정규분포로 형성된다(평균 키, 몸무게, 선호도 등). 만약 주사위의 경우에도 100번 이상, 아니 300번 이상 던지면 6번 중 1번 나올 확률이 68.2%까지 99.2%까지(하단 이미지 참조) 100%에 가까워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많이 시도하면 어떠한 분야에도 적용되는, 심지어 ‘우주의 법칙’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정규분포’에 근접하는 것이다. 이 정규분포는 다수를 확인하는 양적 연구(통계)가 당연히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의 증거이다.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정규분포


역사적으로 흘러가듯 가~~
요즘 애들은 왜 역사 공부를 안 하니!


 영화 <더킹>의 정우성이 조인성에게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특히 통계의 역사는 매우 깊다. 센서스(Census)라고 로마 시대의 인구 조사에서 생겨났고, 왕정시대에 주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이용되었다. 이미 충분히 검증된 조사연구에 있어서 양적인 조사는 매우 체계적인 방법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영화 더 킹(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의 우성이 형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선천적으로 숫자 계산을 못한다던지, 이해가 안 되며 싫다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수포자였다. 하지만 숫자는 수학이 아니다. 내 말은 국어(어학)의 일종으로서 양(量)이다. 


 우리는 모두 선천적일 뿐만 아니라, 진화적으로도 숫자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도서 <넘버스 스틱>의 칩 히스, 칼라 스타는 주장한다. 이건 그냥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뇌는 아주 작은 수만 다룰 수 있게 진화했다. 우리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수는 1,2,3이고 운이 좋다면 4,5까지 구분한다. 인간의 손가락이 5개인 이유이자 한계이다.


  도서 <수학보다 데이터 문해력>의 서울대 통계학과 정성규 교수는 책의 제목처럼 주장한다. 통계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복잡한 수식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의 핵심은 '계산'이 아니라 '생각'이다. 데이터를 읽고, 해석하고 제대로 사용하는 '데이터 문해력'이 핵심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수학이 아닐수록 숫자를 더 상대에게 이해가 잘 되도록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숫자를 통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마침 우리에게 요구하는 지자체와 리더들의 대부분은 양을 요구한다. 우리가 잘하는 부분을 확실히 보여주고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자 기회인 것이다. 단순한 실적, 회계의 수 사용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더욱 발전되기 위해서는 양적 조사 연구의 활용이 필요하다.

 

 양선론을 주장하려 한다. 양선질후(量先質後), 양이 먼저고 질은 나중이다. 양질전환(量質轉換)의 법칙(Quantity becomes Quality)으로 양이 쌓이면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양을 천시할 생각하지 말자. 양을 통해 복지 서비스의 질(質, Quality)적 향상을 노리는 현장이 되길 기대한다. 이런 내 생각이 기여할 부분이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신성한 사회복지현장에서 양을 논하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이거니까(따봉)

 

*참고로 양선론과 양선질후는 내가 만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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