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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봉조사 이상은 Jun 07. 2024

욕구조사 보고서를 트렌드 하게 만들기로 했다

막상 양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갑자기 판을 뒤집어보고 싶었다

너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야구 구단주인 오정세가 술을 마시면서 자신이 고용한 단장인 남궁민에게 하는 대사이다. 여기에 답변하는 남궁민의 대사는 백미이다. "말을 들으면, 당신들이 다르게 대합니까" "(말을 들었던) 후회합니다 그때를" 아마 나 말고도 여러 애청자가 이 순간에 환호를 질렀을 것이다.


스토브리그의 명장면(이미지 출처: SBS DRAMA 유튜브)


이 글은 이제껏 양(量)을 말해 왔지만, 이것은 질(質)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과 질을 떠나 일단 '판'을 엎어보고 싶었다.


  나도 가끔 그런 짓(?)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평소에 그렇게 '양'을 그렇게 찬양하더니, 작년에 막상 나의 업무로 '지역복지 욕구조사'라는 양적 통계분석을 하려니까 이상하게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볼까 계속 고민을 하면서, 일은 추진을 안 하고 계속 책만 보면서 상반기를 날렸다.


 어떻게 하면 형식적이지 않은 욕구조사 보고서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만들면 조금이라도 활용되는 보고서가 나올까?


 덴마크의 도서 <가짜노동>에서는 스트레스만 주고,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가짜노동 Pseudo work'로 규정하고 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일이 아닌 행정과 규정만 늘려 업무 시간을 잡아먹고, 행정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공공영역의 의사, 간호사, 교사, 사회복지사부터 사무직 관리직까지 과도하고 형식적인 행정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욕구조사 보고서도 이렇게 가짜 노동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매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싫었다. 힘들게 기획해서 양적분석으로 빈도부터 회귀까지 영혼을 갈아 만들어도, 책장 깊숙한 곳에 칼집에 칼처럼 꼽혀서 단 한 번도 뽑아보지도 못하는 그런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캐비닛을 채우려고 일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트렌드가 살아있는 욕구조사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책의 부류로 '트렌드' 관련 도서가 있다. 트렌드(Trend)는 어떤 사상이나 행동 현상에서 일정한 방향을 뜻하는 것으로 분야별로 이런 트렌드 관련 책이 무수히 많이 제작된다. 2024년 5월 1일 자 기준으로 YES24에서 트렌드를 검색했을 때 통합검색은 6,105건, 상품은 4,159건이 검색되었다. 그런데 트렌드+복지를 검색하면, 통합검색과 상품 단 2건이 나온다. 전체 중 0.0003%라는 극히 희귀한 비율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게 올해 도서 1개가 생긴 것이고, 작년 2023년에는 0건이었다(0%).


 딱딱한 보고서를 어떻게 하면 이렇게 '트렌드'책처럼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게 제일 유명한 '트렌드 코리아(김난도)' 외 머니, 재테크, 비즈니스, 외식, 채용 등 분야별로 무수히 많은 트렌드 책이 있는데, 왜 복지는 없을까? 그럼 너무 재미있고, 무엇보다 요새 복지가 정말 중요하다던데, 트렌드로 보여주면 너무 복지 현장 종사자나 국민들이 복지에 대한 이해가 너무 높아질 텐데 말이다. 

이렇게 트렌드 관련 책을 흉내내고 싶었다

 

 사회복지현장은 '욕구'를 참 좋아한다. 이전 글에도 내가 쓴 적이 있지만, 복지 현장에서 이용자의 욕구 확인을 통한 복지서비스의 반영의 명목으로 욕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니드 need와 원트 want라고 부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욕구를 영어 검색하면 니드 원트 따위는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욕구... 뭔가 별로이지 않나? 그다지 좋은 어감이 아니다. 긍정성을 지향하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적합하지 않은 단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불순해서 그렇다면 할 말은 없다...


<이전 글>

또 그놈의 욕구... 복지는 왜 트렌드가 없는가?! (brunch.co.kr)

 하지만 세상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다. 저런 트렌드 책을 만드는 데에는 수많은 자료 조사와 연구저자들이 공저해야 가능하다. 작은 복기기관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활로를 찾아보고자 최근 유행하는 AI의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써볼까 하는 생각으로 책들을 찾아보던 차에, 도서 <ChatGPT와 기획, 분석, 보고>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대기업의 경영전략은 보통 신년사로 나타납니다."

 "신년사를 보면 그 기업이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리뷰하고 미래 전략을 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거다 싶었다! 정말이지, 오너와 주요 인사의 말은 절대로 그냥 내키는 대로 쓰지 않는다. 유능한 참모진이 이제껏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하여 내, 외부 환경, 새해전망, 비즈니스, 경영전략 등을 집약한 메시지이다. 지역복지현장에서 이렇게 중요한 오너는 누구일까? 당연히 주민이지만 주민은 너무 숫자가 많다. 다 조사하면 아마 우리는 은퇴할 것이다. 단 한 명만 고르자면 지자체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님!" 


 지역복지는 시정에 맞춰야 한다라는 표현은 많이 현장에서 보편화되어 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복지는 시장님에게 맞춰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통계연보, 협의체자료, 각종 사회조사, 연구 용역 보고서가 있지만, 다 발주는 시에서 넣는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결론은 지자체 장의 시정 연설문에 다 나와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트렌드 보고서를 만들었다. 형식적인 양적 분석의 통계보고서가 아닌, 지역의 복지 종사자라면 누구든 공감할 메시지의 트렌드들을 엮을 수 있었다. 사회복지 보고서에서 많이 쓰는 음, 함, 것, 임 체를 지양하고 ~다 의 평어체를 사용하여 최대한 흥미롭게 써 보고자 노력했다. ChatGPT를 활용하여 글을 썼으며, 수많은 질문과 숫자와 통계표가 아닌 이미지와 메시지로 명확하게 우리의 방향을 전달하였다.  



"우리의 방식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마"


 영화 <머니볼>에서 단장인 브래드 피트가 자신의 확신을 밀어붙이자고 하는 대사이다. 이러한 확신의 밀어 붙임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20연승을 만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결과로 이어졌다. 확신은 반응의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영화 머니볼(소니 픽처스 코리아)


판을 뒤집어 본 결과이다.

뒤집힌 판이 더 큰 판이 될지, 나가리가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비록 나는 '시'하나의 복지 트렌드를 정리해 봤지만, '전국' 규모의 복지에 대한 트렌드 보고서가 만들어지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지금은 간소하게 시정 연설문을 중심으로 만들었지만, 나중에 판을 키운다면 직접 트렌드 조사를 체계적으로 하는 방식도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은 현장이 평가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나는 나대로 계속 말을 안 듣고자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식 출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욕구조사 보고서를 트렌드 하게 만들기로 했다.


 

나의 열렬한 비평가(?)인 아내의 코멘트... "멋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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