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토마스앤더슨이 해석한 인간의 내재된 결함
Inherent Vice 란 단어가 있다. 우리 말로 ‘고유 하자’로 번역된다. 좀 더 쉽게 ‘내재된 결함’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태어날 때 부터 가진 내재된 결함이란 뜻이다. 예를 들면, 계란은 깨지기 쉽고, 초컬릿은 녹을 것이며, 수분을 포함한 석탄은 자연발화한다는 것 등이다. 이 단어는 외부의 압력이나 온도와 같은 외부 조건에 따라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결함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적하보험에서 쓰이는 전문용어다. 고유 하자는 특히 오랜 시간 운송이 필요한 해상보험에서 가장 난감한 문제로 부각되는데, 고유 하자를 가진 물품에 대해선 거래자 간에 특약을 명시하지 않으면 하자담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내가 Inherent Vice란 단어를 알게 된 것은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같은 제목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처음에 보험전문용어인 줄 모르고 제목만 봤을 때는 인간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악의 존재를 뜻할 거라 생각하고, 이번엔 똘똘이+또라이 PTA가 어떻게 그것을 풀어낼까 라고 내심 기대했었다. 어떤 감독에 꽂히면 그 감독의 모든 영화를 보는 나로서는, 매그놀리아와 부기나이트에 꽂힌 후 그의 영화 모두를 섭렵했으니까. 예상대로 이 영화는 해상보험 영화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고유 하자를 풀어낸 영화였다. Inherent Vice를 메타포로 갖다 쓴 것이지.
인간이 가진 고유 하자는 무엇일까? 깨지기 쉽다는 것도 아니고, 녹기 쉽다는 것도 아니고, 자연발화하기 쉽다는 것도 아니다. 부패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것을 DNA에 새기고 태어났으니, 그 놈의 부패 인자는 언제든 밖으로 튀어나갈 기회만 호시탐탐 노린다. 그리고 부패를 불러낼만한 외부적 조건이 갖춰지면 여지 없이 튀어나온다. 한 탕 칠 기회, 사기 칠 기회, 권력을 잡을 기회, 남을 이용할 기회….그래서 인간 세상엔 전쟁이 끊이질 않고, 사기가 끊이질 않고, 감옥이 빌 틈이 없다. 문제는 인간의 고유 하자는 특약을 통해 미리 하자 발생에 대한 약속과 대비를 할 수 없단 것이다. 인간의 부패엔 특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함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왜 defect가 아니고 vice일까? 그것이 퍼트릴 해악이 엄청나기 때문이지. Inherent Vice는 보험용어가 아니라 인간을 정의하는 용어다. 썩을 놈이란 말이 여기서 나온 것 아닌가 싶다. #탁톡 #킴사이다 #무썰 #InherentVice #고유하자 #썩을놈 #오늘의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