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짧은 생각과 짧은 글)
지금 쓰고 있는 글들 옆으로 짧은 글들을 남기고자 합니다.
-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얼마 전 누군가와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드라마에서 ‘다정이 나를’ 이라는 시가 나오는 걸 보게 돼서 이 글을 쓰게 되네요.
시 제목 : 다정이 나를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시 : 김경미 (책. 고통을 달래는 순서)
요즘 인기 드라마인 ‘이 사랑 통역되나요’ 에 나온 시입니다. 시어가 강렬합니다. 그리고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지나친 다정함이 오히려 부담되어 불편해 죽겠다는 느낌일까요? 다정한 그 마음을 온전히 받을 수 없어 날이 선 시어가 되었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그의 다정함은 장미꽃이나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고 눈부신데 나는 그러하지 못하니 초라해 죽을 것만 같다는 뜻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지금 받고 있는 다정함에 너무 행복한데 노을이나 꽃처럼 언젠가 사라지게 되면 괴로워 죽을 것만 같다는 걸까요?
고려말 이조년이 쓴 유명한 시조가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으시겠죠.
일명 ‘다정가’라 불리는 ‘이화에 월백하고.. ‘ 로 시작하는 시조로 마지막 문장이 유명합니다.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다정함이 괴롭고 병이 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봄날 배꽃에 달이 밝게 비치고 마음에 다정함이 병처럼 도져 잠을 설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에서는 상처받은 이에게 다정함이 오히려 힘든 상황을 그리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에서 이 시를 차용한 건 제가 첫 번째로 해석한 것이 맞을까 싶습니다.
다정 다정 하니 생각나는 책이 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버네사 우즈’와 ‘브라이언 헤어’가 공동집필한 책인데 2020년에 출간되어 우리나라에서만 10만 부 이상이 팔려 전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팔린 국가가 돼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부제는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 입니다. 제목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책 내용의 핵심을 옮겨봅니다.
협력은 우리 종의 생존에 핵심이다.
우리의 진화적 적응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개는 개체수가 늘어나는데 비해 늑대는 멸종위기에 처한 이유 등을 예로 들며 친화력(prosociality)과 같은 동물의 행동탐구를 통해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 마음이론 등에 대해 논하고 있어 흥미로운 주제가 많이 담겨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언급한 시에서는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는데 여기까지 쓰다 보니 다정이 날 살아남게 해 줄 것도 같네요.
어쨌든 정이 많은 게 한국사람들이고 저도 유독 정이 많은 편이라 많은 걸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