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자신과의 대화
(내맘대로 문학기행)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일명 라이딩이라는 걸 하는데 동호회 같은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혼자 탑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혼자 타는 시간이 좋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호회원들처럼 잘 타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출퇴근도 당연히 혼자 하는 라이딩입니다.
그 시간은 생각의 시간이기도 하고, 고독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외로움은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여기서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해야 되는데, 그건 한나 아렌트가 그의 책 ‘전체주의의 기원’ ‘정신의 삶’ 등에서 명확하게 정의를 해놓았습니다.
그의 책에서 와로움과 달리 고독(Solitude)은 ‘내가 나 자신과 교제하는 실존적 상태’ 라고 정의합니다.
쉽게말해 고독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평균의 마음’이라는 책에서 이수은 작가는 아렌트의 글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집단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도 버림받는 상태’는 외로움(고립)이라고 합니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부정적 감정이라면,
고독은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혼자인 상태로 사유를 가능케 하는 긍정적 기본조건이라고 합니다.
라이딩하는 시간 동안 저는 오롯이 혼자서 나 자신과 대화를 합니다. 알고 보니 그게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은 이 시대의 지성이라할 수 있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철학적 수상록입니다.
고독을 잃지 않도록 이 책을 다시 떠들어보게 됩니다.
오래전 읽었던 이 책을 다시 꺼내든 건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내 고독의 시간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사유나 성찰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좀 더 깊게할 수 있는지 그 바탕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제 생활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되진 않아야 되니까요.
두 번째는 최근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도움이 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라는 주제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데, 젊은이들에게 편지형식으로 쓴 글이라 이 질문에 대한 깊이 들어가는 답변보다는 당위성 같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좀 아쉬운 점입니다.
이 책에는 총 44편의 편지가 실려있습니다. 편지 받는 사람은 당연히 독자들일테고 편지를 쓴 사람은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근대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해온 유럽사상의 최고봉이라고도 불리는 지성 '지그문트 바우만'입니다.
통찰력과 혜안이 돋보이는 이런 편지를 받은 나는 책 읽는 내내 많이 행복했습니다.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많이 그었고, 밑줄만큼이나 띠지를 붙이고 중요한 부분은 필사도 하고 요약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 그의 연구노력이 담긴 편지라 나 같은 부족한 독자들에게는 선생님이 보내주신 격려와 충고편지로 다가오기도 하고, 나를 유혹하는 매혹적인 철학적 러브레터이기도 했고, 멀리 있는 친구가 최근 삶의 모습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고민하는 고뇌의 편지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낯선 단어인지라 그의 독창적인 핵심사상인 '유동하는 근대'란 개념을 그냥 불확실성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단순한 개념이라기보다는 사회전반의 변화로 인해 기존 사회와 그 이후 사회를 구분하는 총괄적인 개념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즉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원리였던 구조, 제도, 도덕 등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64세에 세계적인 논문 '근대성과 홀로코스트'를 내놓고 그 이후로 82세에는 유동성의 개념을 정리하는 '유동하는 근대'시리즈를 책으로 내놓았다는 그의 약력에서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끈기는 존경을 넘어 경외감이 느껴집니다.
우선 여기서는 그가 진단하는 유동성의 문제들, 사회변화에서 나타나는 개념들을 요약 정리해 봅니다.
o '소비 지상주의' : 유동하는 근대의 문화는 함양해야 되는 사람들을 갖고 있지 않다. '유혹해야만 하는 고객'들만 갖고 있다.
o '질병' (disease) : 편안함의 결핍(dis ease)이라는 단어가 현대적 의미로는 의학적 상태인 질병의 개념으로 교체되었다.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가 행위(의료)의 의미로 전환됨.
o '불평등’ : 사람들이 "행복을 홀로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치명적인 오해이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의 불행으로부터 우리 스스로 거리를 두는 동안에는 결코 행복추구라는 목적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 '사회적 질병'에 대항해 맞서 싸우는 투쟁은 오로지 함께 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물질, 자원 배분에서 뿐 아니라 생명유지에서의 불평등, 실존적인 불평등이 중요 (실존적 불평등: 특정부류에 속하는 개인들이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방해하는 불평등)
o 디아스포라 : 특정 인종 집단이 기존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 원집단과 차이점 발생 차이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인권' 필요 침전물로 '똘레랑스' 소극적, 적극적인 연대개념 필요
o 모두스 비벤디 (생활방식) : 외교용어로는 잠정협정. 바우만은 미리 완전히 결정될 수는 없지만 타인들과 함께 살기 좋은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는 생활방식을 고안, 실험
o 믹소포비아 : 뒤섞임에 대한 공포증(이질 공포증) 다양성과 차이로 가득한 바다 한가운데 유사성과 동일성만으로 이루어진 섬들을 세우려는 충동으로 나타남 (리처드 서넷: 서로 비슷해지려는 욕망을 표현하는 '우리'라는 감정은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더깊이 고찰해야 할 필요성을 회피하게 하는 방식)
개념정리이긴 한데 직접 이렇게 써놓고 보니 뿌듯합니다.
본문 중에서는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편지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편을 가장 마지막 편지로 읽게 됩니다.
이 두 편에서는 여러 사례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논하고 당신은 안 그럴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편에서 정리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카뮈의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자유와 실존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카뮈가 말한 자유를 향한 노력이 바로 인간 실존에 필연적인 측면이라는 것이고 그게 악의 평범성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며 이 글을 마감합니다.
PS. 지그문트 바우만의 다른 책 소개드립니다.
이 책들도 다음에 리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