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뇌는 오늘도 공사 중

드라마 명장면 김치 싸대기와 정재승 교수

by Fairest isle

어느 더운 날, 생크림 롤 케이크를 주문한 나는 딸 J에게 이 케이크를 권하였다. 달콤하고 폭신한 MK 생크림 케이크를.


그러나 그녀는 그보다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당긴다면서 냉동실을 뒤적거렸다.

냉동실에는 J에게 간택되었다가 그녀의 잦은 취향 변화로 인해 버림받은 십 수개의 아이스크림이 가지런히 누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승은을 입고 후궁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 이후 한 번도 용안을 보지 못한 채 쓸쓸한 말년을 보내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궁들만이 아이스크림의 처지를 이해할 것이다. (Feat. 최민석 작가의 시그니처 문장 패러디)


나는 나를 위해 케이크 두 조각을 잘라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칼에 묻은 크림이 아까워 포크로 싹 긁었는데, 문제의 발단은 포크로 크림을 닦아낸 궁상에서 시작된다.


내 입 속에 집어넣으려던 크림 묻은 포크를, 맛보라고 예의상 청소년의 입에 갖다 대었는데, 그녀는 크림에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하다 먹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내 입에 쏙 집어넣었는데, J가 그제야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그럼 케이크 먹고 고 싶어 졌니?”라고 물어보았으나 대답 않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일이 있어 J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째려보며 다짜고짜 방금 전 자기가 자기가 먹으려던 크림을 내가 빼앗아 먹었다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했으나, '그럼 달라고 하지 그랬냐'라고 그리고 조금 전에 케이크 먹을 건지 물어봤을 땐 왜 그냥 들어갔냐고 물었다. 케이크 먹을 거냐 다시 물어봤단 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바득바득 우겼다.


이 무슨 MBC 아침드라마 <모두 다 김치>의 전설의 명장면 ‘김치 싸대기’ 때리는 소리인가. 나는 J의 생떼라는 김치로 내 싸대기를 얻어맞은 듯 어이가 없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추억의 예능 <세 바퀴>에서, 알지도 못하는 안재욱의 결혼식에 왜 가지 않았냐는 김흥국의 호통에 ‘프로 불참러’라는 별명을 얻은 조세호 만이 내 황당한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feat. 최민석 작가)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내 가족의 사회적 신분과 체면을 고려해 생략한다.)


여하튼, 나는 이 오호츠크 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이 수시로 드나들고 충돌하는 것 같은 예측불가 변화무쌍한 청소년의 인지왜곡과 더러운 성질머리에 스트레스받았다. 그러다 지푸라기 잡는 기분으로 예전에 수강 완료한 청소년의 뇌를 주제로 하는, 정재승 교수의 30강짜리 온라인 연수의 강의 노트를 다시 오랜만에 들여다보았다.


정재승 교수가 말하는 청소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선택적 집중으로 다른 자극을 무시하고, 디테일은 기억하나 전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판단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전두엽, 측두엽 같은 거짓말을 하는 뇌의 부분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인생에서 가장 많은 거짓말을 쏟아내며, 자신을 파악하고 자아를 확립하는 전두엽은 아직 미숙하나 자신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다 보니 자신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은 상상으로 메워 ‘허세성 자아도취 성향’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자기 비하와 허세 사이를 오가고 도덕 판단이 들쭉날쭉하여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타인(특히 어른)에게는 엄격하며 특히 공정의 이슈에서 굉장히 예민하다. 도파민이 폭주하듯 분비되어 위험을 감수하는 등 무모한 행동을 일삼으며 자기 절제가 쉽지 않아 컴퓨터, 스마트 폰 등에 쉽게 중독된다.


구구절절 공감.. 일단 J가 인성 쓰레기가 아니라, 그냥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난 청소년 때 안 그랬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때의 당신은 자신에게 지극히 관대한 청소년이었으므로 당신의 흑역사를 상당히 축소하여 기억하고 있음을 명심하라.)


이러한 청소년의 특징은 전두엽이 뇌 중 가장 늦게 발달하는데서 기인한다.

동시에 J의 뇌는 오늘도 성장 중이다. 기억력, 집중력, 문해력, 논리적 사고력, 사회성, 종합적 이해력이 성장하고, 축삭돌기가 수초화 되면서 정보처리 효율성이 높아지고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이 향상되며, 시냅스 가지치기와 신경회로 정교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이때의 연습과 경험이 인생 전체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내가 노력해야 할 것은, 혼돈의 카오스 상태인 뇌에 내가 시시비비를 가리고 잔소리하고 싸우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관계 속에서 어른의 품격을 지키고 이성적이고 평화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미러링 하는 것.

그리고 나의 괜한 불안이 그녀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믿고 기다려주며 그녀의 마인드 셋(세상을 대하는 태도)이 성장형으로 세팅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울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이불 킥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것.

어디 엄한 데서 남한테 김치 싸대기 날리느니 집에서 날리는 게 낫지 않겠는가.


조금 전의 상황 즉, 왜 조금 전 자기가 먹으려던 크림을 엄마가 빼앗아 먹었냐고 따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로 돌아가 보자. 지금의 나는 "어머나, 네가 먹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그 새를 못 참고 크림을 날름 먹었구나. 엄마가 너무 성급했나 봐~"라고 말했어야 했을까. 아이가 조금 진정이 된 이후에 아이가 자신의 행동이 지나친 것 같다 사과하면 부드럽게 받아주고, 먼저 사과한 것에 대해 칭찬해야 되겠지. 만약 그냥 지나간다면 "아이의 무례함을 짚어주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넘어가 주어야 할까. 매번 그냥 넘어갔다가는 늘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남이 이해해주어야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역시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서도 이 아이가 인성 쓰레기에 이기적인 성인으로 자라고 말 것이라는 확신은 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아이와 말씨름을 하며 감정을 손상시키며 아이를 더 흥분시키기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자세로 아이를 대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도 방글방글 하하호호 웃다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는 J의 행동에도 당황하지 않고,

'앗! 방심했다가 또 뒤통수 맞았군. 그렇다면..’ 하고 마법의 강의 노트를 편다.


정재승 교수가 열거한 청소년의 특징을 다시 읽고 있노라니 묘한 안도감과 함께, 살짝궁 정재승 교수와 내가 우리 집 J 두고 '열라' 신나게 씹은 후련한 기분마저 든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후후 훗... 미소가 번진다.


J의 귀여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J는 내 여유 있는 표정을 의아해하다, 제 풀에 죽어 하던 일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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