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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된 인공지능 시대, 통합의 길을 묻다

by 이정호

1. AI, 각자의 길을 걷다


2023년 말부터 2025년 지금까지, 인공지능(AI)은 숨 가쁘게 진화했다. ChatGPT의 등장 이후, 퍼플렉시티, 딥시크, 구버, 코히어, 클로드, 미스트랄, 메타의 LLaMA 시리즈 등 수많은 모델들이 마치 거대한 힘을 겨루듯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엔 유사해 보이지만,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AI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잘하는 일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를 들어, ChatGPT는 감정이 섞인 에세이, 창작 글쓰기, 교육 콘텐츠 작성에 뛰어나며, 문장의 유려함과 구조적 완성도에서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퍼플렉시티는 실시간 검색 기반의 정보 응답이 빠르고 정확하다. 복잡한 주제에 대한 요약도 탁월하다. 딥시크는 기술적인 질문, 논문 스타일의 문장, 프로그래밍 응답에서 뛰어난 정합성을 보인다. 특히 한국어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내고 있어 국내 사용자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AI들은 각자의 영역에 특화되어 ‘전문가형’으로 진화 중이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이 다양성이 곧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2. 창작을 꿈꾸는 이들의 고백 “왜 이렇게 복잡하죠?”


얼마 전, 나는 회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은 영상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보려 했다. 텍스트로 된 슬로건과 문장은 내가 작성했다. 배경 음악은 Soundraw에서 뽑았고, 이미지는 Midjourney, 로고는 Looka를 활용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각 도구에서 얻은 결과물을 통합하려면, 포맷 변환, 해상도 조절, 배경 제거 등의 작업이 따로 필요했고, 각 사이트는 별도의 유료 플랜을 요구했다. 심지어 AI마다 ‘저작권’이나 ‘상업적 이용 가능 여부’가 다 달랐다. 하나의 완성물을 만들기까지 무려 6개의 플랫폼을 오가며 수십 번의 다운로드와 업로드를 반복하며 통합의 과정을 거쳤다.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그 결과물들을 하나로 엮는 일은 인간이 도맡아야 했다. 이것은 단지 나의 경험만이 아니다. 요즘 AI를 활용하려는 많은 사람들은 ‘기술’보다는 ‘경험’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3. 특화는 발전의 증거인가, 분열의 신호인가


우리는 지금 ‘AI의 다품종 시대’에 살고 있다. 음악을 만들고 싶다면 A툴,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면 B툴, 광고 문구는 C툴, 영상 편집은 D툴…


AI는 점점 더 인간의 감각과 사고를 대체하며 세분화되고 있지만, 사용자 경험은 분절되고 피로하기만 하다. 이는 스마트폰 초창기와도 유사하다. 앱마다 로그인, 인증, 결제 방식이 달랐고, 사용자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기능 중심으로 흩어진 앱 생태계를 활용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플랫폼은 통합되었고, 사용자 중심의 UX가 중심이 되었다. 지금 AI도 마찬가지다. 기술의 발전이 더딘 것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의 연결이 더디다.


4. 멀티모달, 그 가능성의 문을 열다


최근 AI 진영에서 ‘멀티모달(Multimodal)’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텍스트, 이미지, 음성, 영상 등을 동시에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는 AI를 뜻한다.


GPT-4o는 음성으로 질문하면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그림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심지어 감정을 담은 목소리까지 흉내 낸다. 이제 하나의 모델이 모든 감각을 다룰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AI가 제대로 된 ‘플랫폼’으로 구현된다면, 사용자들은 하나의 창에서 그림을 그리고, 문장을 쓰고, 음악을 덧입혀 창작물을 완성할 수 있다. 더 이상 파일을 이리저리 옮기지 않아도 되고, 앱마다 로그인을 반복할 필요도 없어진다.


단, 여기에는 기술 외적인 도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기업이 개발한 AI 도구들은 ‘협업’을 고려하지 않는다. 독립적이거나 폐쇄적인 설계가 많다. 그러므로 기술의 진보와 함께, AI 간의 협력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API, 오픈소스, 공동 표준 같은 요소들이 이 협력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5. 미래의 AI, 조력자로서의 진화를 시작하다


우리는 지금 AI가 ‘창작자’냐 ‘도구냐’를 논하는 시대를 지나, ‘동료’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지점에 와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AI에게 질문하고, AI는 응답했다. 앞으로는 AI가 먼저 제안하고, 방향을 잡아주며, 인간의 직관과 감성을 보완하는 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실제로 어떤 모델은 내가 문장을 완성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먼저 감지하고 제안해주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기술을 ‘도구’로 느낀 것이 아니라, 마치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처럼 느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AI 진화’가 아닐까.


6. AI는 도구의 시대를 지나, 경험의 시대로 나아간다


AI는 더 똑똑해졌고, 더 정밀해졌으며, 더 놀랍도록 창의적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경험이며, 기술을 하나로 엮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AI가 아니라, 하나의 플랫폼에서 AI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생태계이다.


이 생태계는 인간이 창작의 중심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기술은 그 곁에서 부드럽게 지원하는 구조여야 한다. AI는 이제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건 기능이 아니라 경험, 도구가 아니라 동료, 기술이 아니라 가치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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