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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악보 위, 나만의 템포로

모든 인생은 하나의 악보다, 각자의 템포로 완성되는

by 이정호

음악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프레스토처럼 숨 가쁘게 달려도 좋고, 라르고처럼 천천히 걸어도 됩니다. 중요한 건 그 템포가 나에게 어울리는가입니다. 마치 인생처럼요.


음악의 빠르기를 뜻하는 ‘템포(Tempo)’는 단지 속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음악의 분위기, 숨결, 감정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죠.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어느 시기는 빠르게 흐르고, 또 어떤 시기는 천천히 지나갑니다. 인생의 각 시기를 음악의 템포에 빗대어 바라보면, 삶의 리듬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지 새삼 느껴지곤 합니다.


프레스토 - 청춘, 뜨겁고 빠르게


청춘은 말 그대로 프레스토(Presto)입니다. 가장 빠르고, 가장 뜨겁고, 가장 불안정한 시기. 아직 삶의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심장은 늘 ‘더 빠르게’를 외치죠. 밤새워 꿈을 꾸고, 사랑에 빠지고,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껴안고 달려갑니다. 넘어져도 일어날 힘이 있는 시기. 프레스토는 때론 숨이 차지만, 그 속엔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생동감이 있습니다.


알레그로 - 성숙의 리듬 속에서


조금 안정되었지만 여전히 박진감 있는 템포, 그것이 알레그로(Allegro)입니다.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책임이라는 악보를 읽어가며 조화로운 연주를 시도하는 시기죠. 가정과 일, 나와 타인의 균형을 고민하며 때로는 더디게, 때로는 격렬하게 살아갑니다. 삶의 주제가 점점 선명해지고, 속도보다는 방향을 신경 쓰기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안단테 - 걸음의 속도로


중년 이후의 삶은 안단테(Andante)입니다. ‘걷듯이’라는 뜻처럼, 이 시기엔 빠름보다 여유가 깃듭니다. 더 이상 앞서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우고,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법을 익히는 나이. 아이들이 자라고, 부모가 늙고, 거울 속 나의 모습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때. 안단테는 삶의 중심에 선 우리가 조용히 삶을 되돌아보는 리듬입니다.


아다지오 - 느림 속의 깊이


아다지오(Adagio)는 느림의 미학입니다. 황혼의 시간, 인생의 저녁 무렵에 어울리는 템포죠. 지나온 세월이 음악처럼 떠오르고, 그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귀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여유로운 커피 한 잔, 창밖을 스치는 바람, 손주들의 웃음소리까지도 음표처럼 가슴을 울립니다.


라르고와 그라베 - 삶의 마지막 악장


라르고(Largo), 그리고 그라베(Grave). 삶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템포입니다. 가장 느리고, 가장 장엄하며,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기는 시간. 이 시기의 삶은 단순히 늦은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채워진 것입니다. 그동안 겪은 모든 사랑과 슬픔, 기쁨과 상처들이 하나의 교향곡처럼 울려 퍼지는 마무리.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간다는 것


모든 인생이 프레스토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아다지오처럼 조용히 걷기 시작하고, 어떤 이는 라르고에서 삶의 진가를 발견하기도 하죠. 삶에는 정해진 박자도, 이상적인 템포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어떤 리듬 위에 서 있는지를 알고 그 템포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음악처럼, 인생도 결국 빠름과 느림, 쉼과 흐름이 어우러진 하나의 아름다운 곡입니다. 그대는 지금, 어떤 템포로 살아가고 있나요?


※ 인생은 악보다. 빠르다고 위대한 것도, 느리다고 초라한 것도 아니다. 당신만의 리듬으로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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