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도시는 낮의 욕망을 벗고
은빛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호수는 그 비밀을 품고
빛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깊은 심연에 새긴다.
하늘은 구름의 느린 숨결을 따라
누군가의 슬픔을 덧칠하듯 흐르고
건물들은 말없이 물속을 바라보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위로를 건넨다.
나는 그 속에 조용히 놓인
하나의 쉼표,
하루의 끝을 감싸 안고
밤의 품 안에 기대어 숨을 고른다.
풀벌레의 연주는 희미한 위안처럼
귓가를 간질이고
잠시 잊었던 내일이
별빛 너머로 고개를 든다.
밤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내 어깨를 다정히 밀어낸다.
이만 쉬거라,
내일도 너를 기다린단다.
<글쓴이의 말>
밤의 도시는 낮과는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합니다. 소음이 걷히고, 불빛이 번지며, 고요가 내려앉은 순간,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시는 어느 고요한 밤, 호수 앞에 홀로 선 순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의 불빛이 호수 위에 물들고, 그 반영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굴곡과 내일을 향한 미묘한 떨림을 읽었습니다.
'도시의 밤'은 때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엔 쉼과 위로,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조용한 격려가 숨어 있습니다. 이 시가 그런 밤의 속삭임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밤이 우리를 밀어낸다 해도, 그건 끝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라는 다정한 약속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