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수 위의 도시, 그 고요한 속삭임(詩)

by 이정호

호수 위의 도시, 그 고요한 속삭임


이정호


도시는 낮의 욕망을 벗고

은빛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호수는 그 비밀을 품고

빛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

깊은 심연에 새긴다.


하늘은 구름의 느린 숨결을 따라

누군가의 슬픔을 덧칠하듯 흐르고

건물들은 말없이 물속을 바라보며

자신의 그림자에게 위로를 건넨다.


나는 그 속에 조용히 놓인

하나의 쉼표,

하루의 끝을 감싸 안고

밤의 품 안에 기대어 숨을 고른다.


풀벌레의 연주는 희미한 위안처럼

귓가를 간질이고

잠시 잊었던 내일이

별빛 너머로 고개를 든다.


밤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내 어깨를 다정히 밀어낸다.

이만 쉬거라,

내일도 너를 기다린단다.


<글쓴이의 말>

밤의 도시는 낮과는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합니다. 소음이 걷히고, 불빛이 번지며, 고요가 내려앉은 순간, 그때야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시는 어느 고요한 밤, 호수 앞에 홀로 선 순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의 불빛이 호수 위에 물들고, 그 반영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굴곡과 내일을 향한 미묘한 떨림을 읽었습니다.


'도시의 밤'은 때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엔 쉼과 위로,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조용한 격려가 숨어 있습니다. 이 시가 그런 밤의 속삭임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밤이 우리를 밀어낸다 해도, 그건 끝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라는 다정한 약속일지도 모르니까요.


D-173.jpg (Photo by J.H.Le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