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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을 지난 감정들

하나의 감정이 무지개로 흩어지는 순간

by 이정호

햇빛 한 줄기가 유리 프리즘을 통과할 때, 우리는 그 안에 숨어 있던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일곱 개의 색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그렇다. 표면에는 하얀빛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숨어 있다.


프리즘을 지난 사랑은 그리움이 되고, 서운함이 되고, 때론 질투, 집착, 설렘, 용서가 된다.


감정은 하나로 머물지 않는다. 어떤 날은 분명 기뻤다. 그런데 그 기쁨을 되짚다 보면 그 안에는 안도의 숨결도 있고, 누군가를 뛰어넘었다는 작은 우월감도 있고, 잠깐의 허탈함도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순간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감정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눈물은 무지개를 안고 있다. 울었다. 분명히 슬퍼서 울었는데, 눈물 속에는 고마움도 있었고, 용서하지 못한 마음도 있었고, 혹은 아주 작은 해방감도 숨어 있었다.


감정은 겹겹이 쌓인 층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빛처럼 프리즘을 만나야만 드러난다.


사람이 복잡한 이유엔 우리는 종종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할까" "왜 이렇게 쉽게 서운해질까" 자책하곤 한다.


하지만 빛이 원래 하얗기만 한 게 아니듯, 감정도 원래 단순한 게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 안에는 분노와 사랑, 연민과 질투, 두려움과 용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의 빛이 어떤 각도로 굴절되어 나왔는지를 헤아리는 일이다.


어떤 이의 차가운 말속에는 미처 표현하지 못한 기대가 숨어 있을 수 있고, 무뚝뚝한 태도 속에는 오히려 조심스러운 애정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프리즘 뒤에 있는 감정을 마주해야 한다. 표면의 말이나 표정만으로는 진짜 마음을 다 알 수 없으니까.


감정은 빛처럼 흐른다. 빛은 직선으로 가지만 어딘가에 닿으면 반사되고 굴절되고 흩어진다. 우리의 감정도 그렇다. 순수하게 출발하지만, 누군가의 말 한마디, 어떤 표정, 혹은 기억의 파편 하나에 부딪혀 전혀 다른 색으로 분산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내 마음조차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게 된다. 프리즘을 지난 우리는 더 깊어진다. 어쩌면 성숙이란, 자기감정을 하나의 색으로 단정 짓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화가 났어’라고 말하기 전에 그 화 안에 숨어 있는 실망, 그 실망 뒤에 숨어 있는 기대, 그 기대 너머의 사랑을 먼저 들여다보는 일.


우리는 모두 자기 안의 프리즘을 통과하며 하얀 감정을 무지개로 번역해 나가는 중이다. 그 번역이 깊을수록 우리는 더 온전한 사람에 가까워진다.


그러니 오늘, 당신의 감정이 너무 복잡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잘못된 게 아니다. 그건 단지, 당신이라는 빛이 더 많은 색을 품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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