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을 위하여
우리는 세 가지 색으로 세상을 본다. 빨강, 초록, 파랑. 우리의 눈은 이 세 가지 색을 조합해 모든 것을 인식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말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할 수 있는 ‘네 번째 색’이 있다고.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색. 지금껏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각의 세계. 상상할 수는 없지만 분명 존재할 수도 있는 그것.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한 사람의 마음도 그런 것 같다고 느꼈다. 우리가 모르는 마음의 색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운 것도 같고, 슬픈 것도 같고, 어쩐지 편안하면서도 불안한 감정. 그건 아마, 이름 붙이지 못한 '네 번째 감정'이 아닐까.
우리가 아직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감정의 빛. 그 감정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말로 담기에 너무 새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공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가끔은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의 말이 너무 조용해서, 혹은 너무 낯설어서.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반응하지?" "저건 좀 과한 거 아니야? “
우리는 이렇게 단정 짓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아직 본 적 없는 그만의 ‘색’ 일 수 있다. 우리는 그 색을 몰라서 무심히 지나쳤을 뿐. 네 번째 색은, 가능성이다. 보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감정, 만나보지 못한 사람, 경험해보지 못한 관계. 그 모든 것들이 ‘네 번째 색’ 일 수 있다.
그건 다름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입구다. 상상할 수 있는 감정은 존재한다. 예술가들은 말한다.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의 감정을 가진다고. 그러니까 지금 느끼고 있는 그 낯선 감정도,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도, 모두 당신의 일부다.
당신이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그 감정을 바라보고, 말을 걸고, 끝내 품어내게 될 때 그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당신만의 색’이 된다.
우리는 새로운 색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지금껏 보이는 것만 믿고 살아왔다. 이해되는 말, 익숙한 표정, 확실한 감정만을 나누며.
하지만 진짜 성장은, 보이지 않는 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에 일어난다. 그 색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마음을 끌어안는 따뜻한 상상. 그게 바로, 우리가 네 번째 색을 꿈꾸는 이유다.
그러니 오늘,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찾아온다면 그저 그 색을 느껴보자.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은 다만, 당신 안의 프리즘이 새로운 빛을 준비하고 있는 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