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RGB와 RYB에 대하여

다름 속에서 피어나는 밝음

by 이정호

세상에는 두 개의 삼원색이 있다.


하나는 물감의 세계, 다른 하나는 빛의 세계.


학교 미술 시간에 배운 RYB(Red, Yellow, Blue)는 색을 섞을수록 어두워진다. 반면, 컴퓨터 화면을 구성하는 RGB(Red, Green, Blue)는 빛을 더할수록 밝아진다.


같은 ‘색’이라는 언어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철학을 지닌 이 두 체계. 나는 여기에 삶의 은유를 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섞일 때, 우리는 어떤 색을 띠게 되는가?


RYB, 2차원의 색 – 어두워지는 만남


RYB는 손에 잡히는 색이다. 붓에 찍은 물감처럼, 서로를 섞다 보면 결국 어두운 갈색이나 검정으로 수렴한다.


처음엔 빨강과 파랑이 분명한 개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서로를 섞는 순간, 색은 탁해지고 무거워진다.


그건 마치 관계에서 나와 네가 각자의 고집을 꺾지 못한 채, 하나가 되려다 결국 둘 다 흐려지는 모습과 닮았다. 그저 '합쳐짐'이 전부가 아님을 이 색은 말해준다.


RGB, 3차원의 빛 – 밝아지는 이해


반대로 RGB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세계다.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이 겹쳐지면 흰색이 된다. 섞을수록 더 밝아지는, 신기한 조화다.


여기엔 억지 섞임이 없다. 각자의 빛이 고유함을 유지한 채, 투명하게 겹쳐진다. 그리고 그 겹침 속에서, 새로운 빛의 공간이 열린다.


우리가 진심으로 서로를 비추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나눌 때 그 관계는 한층 더 깊고 따뜻해진다. 그것은 빛의 합, 곧 공명이다. 사람 사이에도 색이 있다. 우리는 종종 RYB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 믿고, 상대를 덮는다. 서로의 색을 지우려 한다.


그럴수록 관계는 짙고 탁해진다. 하지만 RGB처럼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다면 우리는 예기치 못한 밝음에 도달할 수 있다. 다름은 곧 가능성이라는 걸, 그 빛이 말해준다. 다름은 틈이 아니라, 빛의 입구다.


누군가는 따뜻한 노랑이고, 누군가는 차분한 파랑이다. 또 누군가는 다정한 초록일지도 모른다. 이 다름은 충돌이 될 수도 있고, 더 큰 색의 스펙트럼을 여는 입구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은 단색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그림도, 무지개의 경이로움도 모두 서로 다른 색이 만나 만들어진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름을 통해 성장하고, 다름 속에서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간다.


결국, 다름은 빛을 향한다. RYB는 색의 깊이를, RGB는 빛의 가능성을 말한다. 사람 사이의 만남도 그렇다. 서로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빛을 반사하며 더 큰 조화를 이루는 것.


우리는 각자의 파장으로 세상을 비추되, 함께할 때 더 큰 밝음을 만든다. 마치 RGB의 흰빛처럼. 그러니 부딪힐 때, 상대의 색을 지우려 하지 말자. 그 빛이 내 안에서 어떻게 굴절되고 반사되는지를 느껴보자.


거기서 새로운 조화가 피어오르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가장 눈부신 색’이 탄생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