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고요한 새벽,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전 너의 숨결처럼
조용히, 그러나 또렷이
나를 깨웁니다.
잠결의 안개를 걷어내듯
문득, 너를 떠올립니다.
멀리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너는 내 마음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나는 닫힐 듯 닫히지 않은
너의 마음 문 앞에
이 새벽도 조용히 서 있습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세상은 아직 어둠의 품 안에 있고
그 속을 흐르는 빗소리는
모든 불안과 번민을 씻어내는 듯
고요 속에 은은한 리듬으로 퍼집니다.
그 소리는 단순한 물방울이 아니라,
마치 슈베르트의 소야곡처럼
한 음 한 음이 정제된 그리움이 되어
내 영혼의 현을 울립니다.
내려다본 호수 위엔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물마다
내가 말하지 못한 생각들,
전하지 못한 따뜻함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갑니다.
그 원들이 번지며 전하는 건
단지 기억이나 감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네가 어딘가에서 조용히
세상과 마주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비는 언젠가 그치겠지만,
이 새벽을 적신 믿음은 마르지 않겠지요.
그러니 기억해 줘,
너는 혼자가 아니며
세상의 침묵보다 더 깊은 사랑이
너를 위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분명, 너는 잘 해낼 거야.
언제나 그래왔듯이,
묵묵히, 그리고 아름답게.
<글쓴이의 말>
비가 오는 날이면, 문득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그리움은 언제나 조용히 찾아와
작은 빗방울처럼 마음을 적십니다.
이 시는 그런 새벽,
빗소리에 눈을 뜨고
멀리 있는 너를 조용히 떠올리며 쓴 글입니다.
몸은 멀어도 마음은 가까운,
그 애틋한 거리 속에서 피어나는 말들입니다.
삶의 어느 시기든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고 싶어 집니다.
말로는 다 전할 수 없지만
시로는 남길 수 있기에,
이 마음을 종이 위에 조심스럽게 놓아봅니다.
부디 이 시가
누군가의 아침에 작은 음악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신은 잘 해낼 거예요’라는 조용한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 어느 비 오는 날, 창가에서 이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