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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와 ‘각중에’라는 언어 속에 피어나는 삶의 결

by 이정호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특정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살아있는 유산이다.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를 넘어, 어쩌면 우리의 가장 깊은 속마음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오늘 나는 한국의 다양한 방언 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두 단어, 전라도의 '거시기'와 경상도의 '각중에'를 통해 언어가 지닌 포괄적인 의미와 그 속에 담긴 삶의 결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거시기' - 말없이도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공감의 언어


전라도 사람들에게 '거시기'는 단순한 대명사가 아니다. 특정 사물이나 상황을 명확히 지칭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 하나면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 깊이 서로를 이해하는 듯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거식아, 네가 그때 거시기를 거시기해서 거시기하지 않았더냐”는 문장 속에서 '거시기'는 단순한 말의 나열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이 공유하는 미묘한 분위기와 함께, 눈빛, 표정, 그리고 이미 벌어진 상황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 녹아 있다.


마치 오랜 친구 사이에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듯, '거시기'는 전라도 사람들의 깊은 공감대와 정서적 유대를 상징한다. 이처럼 '거시기'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미묘한 감정과 상황들을 보듬어주며,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각중에' - 돌발적인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기민한 표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경상도 방언에는 '각중에'라는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이 단어는 '갑자기' 또는 '경황이 없는 와중에'와 같이 돌발적으로 일어난 상황에 대한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어리둥절하거나 당황스러울 때, 경상도 사람들은 "나도 참 각중에"라고 말하며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단번에 표현한다.


이 한마디 속에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아차' 싶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의 솔직한 당혹감과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삶은 늘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기에, '각중에'는 바로 그런 변수 많은 우리네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경상도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투리, 지역의 숨결이 담긴 소중한 자산


'거시기'와 '각중에'를 글로 풀어내면서, 나 역시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다채로운 감정과 순간들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 단어들이 주는 묘한 공감과 위로에 저절로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이처럼 각 지역의 사투리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공동체의 정서가 녹아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날 표준어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사투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사투리는 우리가 가진 또 하나의 공간적 자산이자, 지역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투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몇 마디 말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이들의 웃음과 눈물, 오랜 시간 쌓아온 추억과 삶의 지혜가 함께 담겨 있기에, 우리의 소중한 일부가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투리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보존하며 다음 세대에 전승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거시기'와 '각중에'처럼 언어 속에 살아 숨 쉬는 우리 문화의 다채로운 모습을 앞으로도 더 많이 발견하고 소중히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각중에 거시기해서 저도 이 글을 거시기하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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