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나무 울타리 너머로
푸른 잎이 속삭이는 아침,
나는 길에게 묻는다.
왜 굽었는지,
왜 돌아서야만 하는지.
가까워 보였던 끝은
언제나 먼 손짓이었고,
짓밟혀 잔디 하나 자라지 못한
흙의 고백은
아무 말 없이, 깊었다.
그 길을 걷는 이는
말이 없고,
말 대신 발걸음으로 대답했다.
침묵은 외로웠고,
외로움은 그대로 길이 되었다.
어쩌면
길도 나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며
묻고 있었는지도.
"너는 왜 걷니?"
"그저, 살아 있기 위해서요."
햇살은 위로였고,
나무 그림자는 다독임이었다.
길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들었다.
그 고요한 속삭임을.
<글쓴이의 말>
길을 걷다 보면 문득, 그 길이 나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굽은 길, 돌아가는 길, 때로는 아무도 지나지 않은 외로운 길 앞에서 우리는 선택하고, 머뭇거리고, 다시 묻습니다. "이 길이 맞을까?"
이 시는 어느 초여름 아침, 햇살 속에 조용히 서 있는 산책로를 걷다가 떠오른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짧지 않은 인생을 지나며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 위에 서 있고, 그 길 위에서 묻고, 답하며, 또다시 걷고 있지요.
이 시를 통해, 지금 당신이 걷는 길이 설령 외롭고 굽어 있더라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의 다정한 다독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길은 말이 없지만, 늘 당신 곁에 있음을 잊지 마세요. 당신도 길도 외롭게 같이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