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길에게 묻다(詩)

by 이정호

길에게 묻다


이정호


나무 울타리 너머로

푸른 잎이 속삭이는 아침,

나는 길에게 묻는다.

왜 굽었는지,

왜 돌아서야만 하는지.


가까워 보였던 끝은

언제나 먼 손짓이었고,

짓밟혀 잔디 하나 자라지 못한

흙의 고백은

아무 말 없이, 깊었다.


그 길을 걷는 이는

말이 없고,

말 대신 발걸음으로 대답했다.

침묵은 외로웠고,

외로움은 그대로 길이 되었다.


어쩌면

길도 나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며

묻고 있었는지도.

"너는 왜 걷니?"

"그저, 살아 있기 위해서요."


햇살은 위로였고,

나무 그림자는 다독임이었다.

길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들었다.

그 고요한 속삭임을.



<글쓴이의 말>

길을 걷다 보면 문득, 그 길이 나를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굽은 길, 돌아가는 길, 때로는 아무도 지나지 않은 외로운 길 앞에서 우리는 선택하고, 머뭇거리고, 다시 묻습니다. "이 길이 맞을까?"

이 시는 어느 초여름 아침, 햇살 속에 조용히 서 있는 산책로를 걷다가 떠오른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짧지 않은 인생을 지나며 우리 모두는 각자의 길 위에 서 있고, 그 길 위에서 묻고, 답하며, 또다시 걷고 있지요.

이 시를 통해, 지금 당신이 걷는 길이 설령 외롭고 굽어 있더라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의 다정한 다독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길은 말이 없지만, 늘 당신 곁에 있음을 잊지 마세요. 당신도 길도 외롭게 같이 있음을.


20250605_074502.jpg (Photo by J.H.Le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