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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호 Aug 23. 2023

어머니 접니다

바쁜 일상을 마무리하고 어김없이 달콤한 주말을 맞았다.

     

아침시간 아직 채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폭염을 비켜간 공원을 걸었다.

     

조깅을 하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여가를 즐기는 동호회 회원들, 조용하게 벤치에 앉아 사색을 즐기는 노부부...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와 함께 졸졸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은 공원의 아름다움을 더욱 진하게 느끼게 하여주고 있다.

     

막 벤치가 모여 있는 코너를 돌아가려는 순간 스피커폰에서 들려오는 노부인과 아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통화에 방해가 될까 봐 조심스레 뒤편에 섰지만 그 소리는 명확하고 또렷하게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언뜻 보아도 족히 70은 넘어 보이는 아들이 나이 드신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고 있었다. 스피커폰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음성으로 보아 말도 상당히 느리고 성대가 많이 떨리는 톤에 대략 90은 넘어 보이는 나이 같았다.


밥은 잘 드셨습니까? 뭐 불편한 것은 없으신지요? 여름철 더위는 잘 피하고 계신지요? 일상적인 물음에 노인께서는 ‘그래 잘 지낸다’ ‘나야 별일 없지 애들은 잘 지내냐?’ ‘나 걱정이랑 하지 마라’.....

‘그래요 어머니 건강 잘 챙기시고 그만 들어가세요’ 하고는 여운이 남는 전화가 끊어진다.

     

아들과 노모의 전화를 다 듣고 혹여나 들킬까 봐 황급히 자리를 뜨면서 예전 같으면 돌보심을 받아야 할 분이 노모를 모셔야 하는 노령사회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주말 아침시간 조용한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 어머니가 생각났는지? 집에서 전화하기엔 아내나 애들의 눈치가 보였는지? 아니면 요즘 부쩍 노쇠하신 어머니의 걱정으로 전화를 드렸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본인도 느끼는 노화에 대한 이런저런 사유가 더 노모가 생각났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누구나 겪고 있고, 누구나 겪어야 하고,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인데 신문 지면을 채우는 온갖 해괴망측한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기사들로 우리 사회는 과연 물질문명과 함께 성장하고 있나, 아니면 역성장을 하고 있나 의구심이 깊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가 될 수는 없지만 반드시 누군가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의 추도일이 다음 달로 다가왔다. 또 2주 후면 우리나라 두 번째 명절인 한가위를 맞이한다. 나도 어머님께 전화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별나게 자식 사랑으로 자기 몸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내 전화기엔 아직도 어머니의 전화번호가 남겨져있다. 혹시 하늘나라에서 전화를 거실까 봐 차마 지우 지를 못하겠다.

     

그나마 아직 고아가 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그렇게도 크고 아버지처럼 힘센 분은 없어 보였던 날은 달음박질쳐버렸고, 구부정해진 허리와 깊이 파여 가는 주름의 깊이는 훈장이라고 여기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다행히 나도 어제 전화를 드렸다. 밥은 드셨는지요? 더위에 건강은 어떠신지요? 불편한 건 없으신지요? 약은 잘 드시고 계시지요? 이 질문에 모르쇠로 ‘그래 다 괜찮다. 너희들만 잘 있으면 아무 탈 없다’

     

오늘 아침 똑같은 대화내용을 들으며 발길을 집으로 향했다.


부모와 자식은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또 자녀들은 버거운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게 우리네 삶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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