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물 위에 번지는 빛은
흩어진 어제의 비늘,
잡으려는 손길보다 먼저
사라지며 더 눈부시다.
고요는 내 걸음을 붙잡고
심연의 울림을 끌어올린다.
나는 물결에 흔들리며
사라진 기억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하루는 소음처럼 몰려와
아무 대답도 남기지 않는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빛보다 오래 흔들리는 질문,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자연은 응답하지 않는다.
다만 빛과 어둠을 교차시키며
나를 또다시 묻는다.
나는 윤슬 위에 서 있다.
별빛인가, 기억인가,
덧없는 물결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의 찰나인가.
잠시 반짝이는 이 빛이
영원의 파편임을 믿으며,
나는 흘러가고 있다.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존재의 한 순간으로.
<글쓴이의 말>
물결 위에 반짝이는 윤슬은 단순한 빛의 흔적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기억의 비늘이자 삶의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어제의 기억은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그 흩어짐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나는 호수 위에 비친 풍경을 보며, 존재란 결국 물결 위의 윤슬처럼 잠시 머물다 흘러가는 것임을 생각했습니다.
자연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질문을 남기고, 그 질문을 품은 채 걷는 것이 곧 삶의 길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 시는 그 순간의 깨달음을 담은 작은 메모이자, 존재와 시간, 빛과 여운에 대한 사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