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에게 쓰는 편지
사랑하는 나에게,
이 편지를 쓰는 손이 떨린다. 당신이 이 글을 다시 펼치는 그날, 나는 어떤 모습일까. 주름이 더 깊어졌을까. 허리가 더 굽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당신 특유의 그 미소를 짓고 있을까.
기억하는가. 흙길을 맨발로 뛰어다니던 그 소년을. 여름 해가 작열하던 논두렁에서 아버지 등을 따라 일하던 그 아이를. 가난했지만 꿈만은 컸던 우리를. 그때 우리는 몰랐다. 그 흙냄새가, 그 땀방울이, 그 단순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나는 달렸다. 정말 열심히 달렸다.
지방의 작은 학교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군대에서도 묵묵히 견뎠다. 정보통신부 공무원으로 일하던 30년, 그 시간들을 기억한다. 모뎀 소리가 요란하던 시절부터 초고속 인터넷이 전국을 뒤덮던 그때까지. 나는 그저 작은 톱니바퀴였지만, 그 거대한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밤을 새워 일하고, 주말도 반납하고, 가족과의 저녁도 제대로 못 먹던 날들. 그래도 행복했다. 나라가 발전하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아내를 만난 것은 축복이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 그녀 없이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내가 일에 미쳐 있을 때, 아이들을 키우고 집을 지켰던 사람. 내가 지쳤을 때 아무 말 없이 따뜻한 차를 내밀던 사람. 미래의 나여, 제발 부탁이다. 그녀에게 더 자주 고맙다고 말하라. 사랑한다고 말하라. 늦지 않았다.
딸과 아들. 내 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가장 큰 미안함이다.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한 것, 더 자주 놀아주지 못한 것, 그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 것. 나는 너무 바빴다는 핑계로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미래의 나여,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화하라. 찾아가라. 당신의 시간을 그들과 나누라.
이제 나는 멈춰 섰다. 60년을 쉼 없이 달려온 뒤, 처음으로 숨을 고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더 어렵게 느껴진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연하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쓴다.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에게.
미래의 나여, 들어다오.
이제는 천천히 걸어도 된다. 아니, 천천히 걸어야 한다. 지난 60년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길 위의 풍경을 즐기는 여행이다. 아침 공기의 차가움을, 저녁노을의 붉음을, 가족의 웃음소리를,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느껴라. 우리가 놓쳤던 모든 것들을.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 마라. 이미 증명했다. 시골 소년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 가정을 지켰다는 것,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배우는 것을 멈추지는 마라.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변하고 있겠지. 아이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열광하고 있겠지. 그래도 괜찮다. 이해하려 노력하라. 물어보라. 배우라. 우리가 정보통신 혁명을 만들어낸 세대라는 자부심을 잊지 마라.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누어라. 우리가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교육받을 수 있었던 것, 공무원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가족을 이룰 수 있었던 것. 모두 이 사회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마라. 젊은이들을 격려하라. 작은 나눔이라도 실천하라.
무엇보다 용서하라. 나 자신을. 완벽한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 완벽한 남편이 되지 못한 것, 때로는 화를 내고 실수하고 후회했던 것들. 모두 괜찮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가진 것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프지 마라. 부디 아프지 마라. 이 몸이 60년간 얼마나 고생했는가. 밤샘 근무를, 스트레스를, 피로를 모두 견뎌낸 이 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이제는 이 몸을 사랑하라. 매일 산책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충분히 쉬어라. 건강해야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더 오래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기억하라.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커피 한 잔의 여유가 행복이라는 것을. 가족의 안부 전화 한 통이 축복이라는 것을.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삶은 이런 작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미래의 나여,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라. 하루하루가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한다. 가끔은 그 시골집을 생각하라. 아버지의 거친 손을,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을, 흙냄새를,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을. 그곳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그 순수함을, 그 진실함을 잊지 마라.
인생의 마지막 30년은 당신의 것이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온전히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당당하게, 그리고 감사하며 걸어가라.
당신은 잘 살아왔다. 정말로.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사랑한다, 나 자신이여.
2025년 가을, 당신의 과거로부터
"우리는 흙에서 왔고, 하늘을 향해 걸었으며, 이제 다시 땅을 밟으며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