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은 너무도 높고 맑았다.
가을은 언제나 내 마음의 창을 열어젖힌다.
가을 풍경 속 여백의 발견
길가에 수북이 쌓인 낙엽은 바람에 흩날리며 작은 노래를 부른다.
햇살을 받아 불그스레 타오르는 단풍잎은 마지막 춤을 추듯 흔들리고,
들녘의 벼 이삭은 고개를 숙이며 황금빛 물결을 일으킨다.
시냇물은 하늘빛을 그대로 품고,
그 위로 날아오른 잠자리의 날갯짓이 반짝인다.
새벽이면 산허리에 내려앉은 안개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저녁이면 붉은 노을이 하늘 끝까지 번져 마음을 적신다.
가을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담백함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숨결을 듣고,
스스로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여백이 주는 사색과 내면의 대화
여름의 열기와 소란이 물러간 자리에는
고요와 차분함이 남아 있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잎을 내려놓고
본질만 남은 가지로 서 있고,
거둬진 들판은 텅 빈 채로 가을의 바람을 맞는다.
이 비어 있는 풍경은 허전함이 아니라,
사색이 머물 수 있는 자리다.
창문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에
문득 지난날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말하지 못한 고백, 잊고 있던 얼굴,
내가 지나쳐온 선택들까지.
가을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의 너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디로 가려하는가.”
여백은 오래 미뤄왔던 내면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
잔잔한 호수 위에 번져가는 물결처럼,
가을은 마음속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가을의 여운 속에서 찾는 나만의 세계
가을은 언제나 아련한 추억을 불러낸다.
마을 어귀에 피던 국화 향기,
바람에 흔들리던 억새풀,
창가에 앉아 바라보던 노을빛 하늘,
그리고 부르지 못했던 첫사랑의 이름까지.
그리움은 때로는 슬픔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단단하게 붙드는 힘이다.
낙엽이 한 장 두 장 흙으로 스며들 듯,
추억은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가을밤 하늘에 떠오른 둥근달은
세상의 모든 그리움을 흰빛으로 비춘다.
차가운 공기 속에 서 있노라면,
그 달빛은 오히려 따뜻하게 마음을 감싼다.
그 순간, 나는 잊고 있던 나를 다시 찾는다.
앞만 보며 달려오느라 놓쳐버린 목소리,
내일을 밝혀줄 작은 등불을 발견한다.
마치 시골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처럼,
가을의 여운은 우리의 마음에 아련한 추억과 따뜻한 그리움을 남긴다.
그리고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다시 찾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