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버들은 바람의 손끝에서
긴 머리카락을 빗질하며 춤을 춘다.
멈추지 않는 그 몸짓은
세상의 첫 숨결을 닮아 있다.
아침은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며
향기 어린 숨을 내쉰다.
처서의 문턱에 밀려난 더위는
저 멀리 그림자로 흩어지고,
호수 건너 다가온 친구의 손길이
물결 위에 은빛 웃음을 건넨다.
가지 끝에 매달린 물방울 하나,
땅의 맑은 맥박을 품은 듯
빛을 머금고 흔들리다
새로운 색을 그리려 한다.
내 발걸음은 아침 햇살을 닮아
녹색 웃음으로 번지고,
시간은 그 보폭 사이에서
조용히 밀려나 강물이 된다.
저 깊은 물속에 감춰둔 추억도
오늘은 스스로 문을 열 듯
하루의 빛을 건져 올린다.
나는 기다린다.
버들이 속삭이는 숨결 따라
세상이 다시 열리는 순간을
가만히, 그러나 뜨겁게.
<글쓴이의 말>
버들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고, 호수는 그 흔들림마저 고요히 끌어안습니다. 그 풍경 앞에서 저는 문득,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흔들림은 불안의 표지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고요는 공허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품은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자연은 늘 우리보다 먼저 말없이 가르쳐 줍니다. 춤추는 버들잎은 세상의 첫 숨결을 닮았고, 호수의 수면은 기억과 시간의 심연을 비춥니다. 그 사이에서 인간의 하루는 순간이자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이 시는 단지 풍경을 옮겨 적은 기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입니다. 흔들림과 기다림, 고요와 춤 사이에서 우리는 결국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흐름 속에 서 있는가.”
이 시가 친구에게 단순한 자연의 그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비추는 한 장의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