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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 속, 내 마음의 섬을 찾아서

by 이정호

현대 사회는 마치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색깔과 질감으로 빛나고 있다.


직업도, 가치관도, 심지어 삶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까지도 저마다 다른 결을 자랑하며 공동체라는 하나의 공간에 모여든다. 인공지능이 가져온 격변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다름'과 마주하고, 그 다양한 빛깔의 향연에 눈이 부시다.


성별의 차이, 경제력의 차이, 종교관의 차이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며, 우리는 그 파도 위에서 홀로 서 있는 나약한 존재처럼 느껴지곤 한다.


문제는 그 다채로움의 조화 뒤에 숨겨진 ‘불편함의 간극’이다. 모두가 하나의 단일성을 지향하던 시절의 관습은, 이제 수많은 '나'들의 고유성을 억압하는 낡은 잣대가 된다.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타인의 존재는 곧 마음의 짐이 되고,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은 시린 바람처럼 우리의 심장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왜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빨리 달릴까? 왜 나는 이토록 지치고 힘든 길을 걷고 있을까? 발전된 도구로 편리해진 삶과는 역설적으로, 우리 마음은 이 잔인한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갈등과 고통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아픈 이유는, 타인의 화려한 성채를 내면의 텅 빈 공간에 투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정성껏 포장하여 보여주는 편집된 일상이나 하이라이트 필름을 내 삶의 '원본'과 끊임없이 대조하며 스스로를 무참히 깎아내린다.


누군가의 단단해 보이는 경제력, 흔들림 없는 태도, 반짝이는 일상을 보며, 정작 내 삶의 소중한 부분들을 깎아내린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가 키워야 할 것은 타인의 잣대에 맞추려는 불안한 완벽함이 아니라, 어떤 시련의 바람에도 꺾이지 않을 나만의 '마음 근육'이 아닌가?


마음 근육을 키우는 첫걸음은 수긍에서 시작된다. 남과 나를 비교의 대상에서 '수긍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는 긍정적인 끌어당김이 필요하다.


'나는 느리지만, 이 길을 깊이 있게 걷고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여주는 용기, '저 사람과는 색깔이 다르지만, 내 색깔 역시 세상에 꼭 필요한 아름다움이야'라고 인정해 주는 따뜻함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포기가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을 보듬어 안는 가장 절실한 사랑의 방식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세상을 향해 단단한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내면의 뜰'을 정성껏 가꾸는 일이다. 타인의 소음이 아닌, 내 심장의 고유한 박동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 뜰을 평화롭게 지켜내기 위해서는 단단한 경계가 필요하다. 타인의 무분별한 시선이나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의 평화를 짓밟지 못하도록, '여기까지가 나예요'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 용기. 그것이 내면의 뜰을 보호하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이다.


경제적인 풍요나 사회적 지위가 줄 수 없는 진정한 자유는,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생각의 뿌리에서 자라난다.


이 시대의 숙제는, 타인과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강하며, 각자의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부디 아픈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려 애쓰지 말자.


오늘 하루, 홀로 고군분투했던 당신의 삶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험난한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가장 절절하고 단단한 '마음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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