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서다
창가는 이상한 곳이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발은 방 안 마루를 딛고 있는데 눈은 벌써 저 멀리 가을 하늘을 보고 있다. 이런 애매함이 싫지 않다. 오히려 이럴 때 생각이 잘 된다.
가을 창가에 서면 시간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바깥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내 안은 여전히 어느 한순간에 멈춰 있는 것 같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니.
빛에 대하여
오후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먼지들이 빛 속에서 천천히 떠다닌다. 문득 이 빛이 8분 전 태양에서 출발한 거라는 게 생각났다. 우리가 보는 건 다 과거의 것이구나. 지금 내가 기억 속에서 보는 그 얼굴도.
빛 너머로 여러 시간들이 겹쳐 보인다. 어제, 지난여름,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였던 날들. 빛이란 게 단순히 밝게 비추는 게 아니라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 같다.
가을이 말하는 것
계절은 가버렸지만 무언가 남았다. 그리움이라고 해야 할까. 작은 온기 같은 것. 사람들은 가을을 상실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가지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무를 보면 안다. 잎을 다 떨구는 게 상실이 아니라 겨울을 버티기 위한 선택이라는 걸. 쓸데없는 걸 내려놓고 중요한 것만 남기는 것. 내 마음에서도 뭔가 떨어져 나가는 게 느껴진다. 무섭진 않다. 비워진 자리에 더 선명한 게 남는다는 걸 아니까.
바람의 존재 방식
창틈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은 볼 수 없지만 의심할 수 없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커튼이 펄럭인다. 바람은 흔적으로만 존재한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떠난 사람의 온기도 흔적으로 남는다. 같이 봤던 풍경들, 나눴던 침묵들. 창가에 서면 그런 흔적들이 더 또렷해진다. 경계에 있을 때 기억이 더 선명해지는 걸까.
혼자라는 것
고독이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다. 보통은 고독을 피하려고 하잖나. 근데 창가에서 느끼는 고독은 좀 다르다. 짐이라기보다는 선물 같다.
혼자 있을 때 나는 나다워진다. 남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창가의 고독은 특별하다. 세상과 완전히 끊어지지도, 완전히 붙어있지도 않은 상태. 이 애매한 위치에서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한다.
걷는다는 것
그리움을 따라 걷는다. 실제로 어딘가로 가는 건 아니다. 몸은 창가에 있지만 마음은 계속 움직인다. 과거로, 미래로, 있을 수 없었던 가능성들로.
그리움을 따라 걷는다는 건 시간 속을 걷는 거다. 창가는 그런 여행을 시작하기 좋은 곳이다.
차가워지기 전에
어딘가 아직 남아있을 그 사람의 온기. 내 손끝이 차가워지기 전에 느끼고 싶다. 이 문장을 쓰면서 두려웠다. 그 온기가 사라질까 봐가 아니라, 내가 느낄 수 없게 될까 봐.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무뎌진다. 견딜 수 없던 슬픔도 익숙해지고, 생생했던 기억도 흐려진다. 살아남으려면 무뎌져야 하는데, 무뎌지면 뭔가를 잃는다.
창가에서 손끝을 본다. 차가운 유리에 손을 댄다. 아직 온도를 느낀다. 차갑고 따뜻한 걸 구별할 수 있다.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아직 느낄 수 있다는 것, 아직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방 안으로
창가는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경계는 불안정하니까. 결국엔 안으로 들어오거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창가에서 보낸 시간은 헛되지 않다. 거기서 두 세계를 동시에 보는 법을 배웠으니까.
생각해 보면 인생이 다 이런 것 같다. 우리는 늘 뭔가의 사이에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 그 애매한 곳에서 가장 진실한 순간들이 온다.
방 안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안다. 나는 또 창가로 갈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그리움이 올 때마다. 창가는 항상 거기 있고, 나는 언제나 돌아간다.
경계에서 가장 많은 걸 본다. 그리고 그 봄 자체가 이미 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