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눈 내린 아침, 창밖을 바라보면 세상이 하얗게 지워져 있습니다. 어제의 흔적도, 지난주의 발자국도 모두 사라진 듯 고요한 그 풍경 속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길은 과연 내가 선택한 길인가.
눈길을 걸을 때는 묘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설원 위에 내 발자국을 찍는 일.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때로는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발자국들이 있습니다. 크고 작고, 때로는 비틀거리며 찍힌 그 흔적들이 바로 '나'라는 존재의 지나온 시간입니다.
후회도 있습니다.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순간들, 하고 싶은 말을 삼켜버렸던 날들, 도전하지 않고 물러섰던 기억들.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이, 결국은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들이었음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아쉬움과 후회마저도 내 인생의 일부입니다. 그 발자국들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것들이 오늘의 내가 더 단단하게 걸을 수 있게 해주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자주, 자신이 '원본'임을 잊어버리는 걸까요.
SNS를 열면 누군가의 빛나는 일상이 펼쳐집니다. 완벽하게 정돈된 아침 식사, 자신감 넘치는 미소, 성공적인 커리어의 기록들. 우리는 그것을 보며 어느새 비교를 시작합니다. '나는 왜 저렇지 못할까.'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는 타인의 삶을 모방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흐려지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루틴의 굴레 안에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서서히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낯선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인지, 아니면 내가 흉내 내고 있는 누군가 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 내가 길을 잃었구나.
김유영 작가는 그의 책 '매일의 태도'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네 인생길엔 내비게이션이 없다. 내가 선택하고 걸어가는 길이 곧 나의 길이고, 삶은 남의 복사본이 아니라 유일한 원본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가슴 어딘가가 뜨거워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원본으로 태어났습니다. 지문이 같은 사람이 없듯,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고유함을 지우고, 누군가의 흐릿한 복사본이 되려 하는 걸까요.
복사본은 편리합니다. 이미 검증된 방식을 따르는 것이니까요. 실패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사본에는 결코 담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만의 향기, 나만의 결, 나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의 감촉. 그 고유한 원본성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일지 모릅니다.
매일의 작은 태도들이 삶을 만듭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를 어떻게 맞이하느냐, 누군가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작은 실패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갖느냐. 이 모든 미세한 선택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쌓여 일 년이 되고, 그 일 년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사람의 인생이 됩니다.
원본으로 산다는 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을 트는 것. 회의 시간에 두려워도 내 생각을 한 마디 꺼내보는 것. 남들이 다 가는 길 대신, 내가 늘 궁금해했던 골목으로 잠깐 발걸음을 돌려보는 것. 그런 작고 용기 있는 선택들이 쌓일 때, 서서히 나만의 발자취가 새겨집니다.
그 발자취는 반드시 곧고 완벽할 필요가 없습니다. 눈길 위의 발자국처럼, 때로는 비틀거리고 때로는 멀리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발자국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길을 걸어가려면 자기가 어디로 걸어가는지 알아야 한다.‘
방향을 안다는 것. 그것은 목적지의 좌표를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어떤 삶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지, 무엇이 나를 웃게 하고 무엇이 나를 울게 하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방향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묻는 용기. 남의 지도를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지, 남의 꿈을 대신 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하는 시간.
오늘 하루, 내비게이션 없이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는 것이 두렵더라도, 내 발이 가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한 발짝만 내디뎌 보는 것. 그 한 발짝이 어쩌면, 비로소 나답게 살기 시작하는 첫 번째 발자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원본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길은 아직 눈처럼 하얗게 펼쳐져 있습니다.
"길을 걸어가려면 자기가 어디로 걸어가는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