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새벽, 아침 햇살이 아직 골목 안으로 스며들지 않았을 때, 우리는 저마다 다른 반응으로 하루를 맞이합니다. 개 짖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소리를 쓸쓸한 dawn chorus, 즉 새벽 합창처럼 들으며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이도 있습니다.
같은 소리 하나를 두고도 누군가는 소음이라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배경음이라 여깁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름’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비추며, 때로는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기도 하고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예술의 영역은 이러한 다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색채가 파격적인 추상화를 보는 누군가는 “이게 무슨 그림이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서 내면의 세계가 절실히 녹아난 예술가의 영혼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거리의 낙서를 낭비이자 위법 행위로만 보는 시선과, 낙서 속에 녹아있는 자유분방한 표현이야말로 도시 미학의 시작이라 여기는 시선 역시 맞부딪힙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선이 만들어내는 충돌은 때로는 예술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더 폭넓은 이해의 장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합니다.
날이 저물어가면, 노을빛에 잠긴 도시가 제각각의 표정을 드러냅니다. 건물 사이로 비치는 붉은 노을이 어느 이에게는 로맨틱한 풍경일 수 있으나, 어느 누군가는 퇴근길의 피곤함과 함께 “오늘도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허무함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지요.
결국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똑같은 감정이 공유되지는 않습니다. 이때 우리가 깨닫는 것은, 다름은 우리의 감수성을 더욱 다채롭게 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름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풍경을 하나의 틀에 맞춰 해석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약 74억 인구가 모두 각기 다른 DNA를 지녔다고 하지요. 그뿐 아니라 지문, 동공, 정맥의 무늬까지 신비로울 정도로 하나하나 다릅니다. 이러한 다름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딜 가든 자신의 신념, 종교, 성 정체성, 경제적 배경, 언어, 문화가 완전히 동일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차분한 힐링 음악을 즐기지만, 또 다른 사람은 가슴을 울리는 락 사운드를 통해 위안을 얻습니다. 비슷하게 생겨 보이던 형제자매도 서로 전혀 다른 가치관을 품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다름 들을 부정할 수 없고, 또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다름이 우리를 끊임없이 확장해 주고, 때로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을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따른 다름 역시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된 골목길에서 느껴지는 향수와, 초고층 건물들이 가득 찬 도시의 최첨단 풍경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둘이 만나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또 한 번 놀랍도록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됩니다. 마치 낙엽을 쓰레기로 여기는 이와, 한 편의 시어(詩語)로 보는 이가 만나 서로에게 없던 시각을 선물 받는 것처럼 말이지요.
다름은 때로 인간 내면의 골을 깊게 파고듭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이와 마주할 때, 우리는 우선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한다면, 나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결핍과 배움을 맞대게 됩니다.
부모의 경제적 상황이 달라 학교에서 다른 체험을 하고 자란 친구, 혹은 신앙이 달라 의례와 금기가 전혀 다른 이웃을 이해해 보려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서히 관용과 공감의 깊이를 배워나갑니다.
이렇듯 다름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동시에 성장하게 만듭니다. 서로 다른 관념이 부딪힐 때 생기는 충돌은, 때론 상처를 남길 수도 있지만, 그 상처를 통해 새로운 시야와 감각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해 겪는 삶의 교육일 테지요. 그리고 그 교육이 쌓여 나갈수록, 우리는 더 깊은 내면세계와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이에게는 기쁨이 나에게는 슬픔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위선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서로에게 다른’ 지점에서 우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다름을 존중한다는 것은 남에게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삭제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를 정직하게 마주하며 얼마간의 거리 두기와 조율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결국, 다채로운 빛깔로 뒤섞인 이 사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거울이 됩니다. 남녀의 차이, 나이의 차이, 종교적 신념의 차이, 경제적 배경의 차이, 그리고 그 수많은 생각의 차이가 모여, 우리의 삶에 끝없는 오케스트라 곡을 선물하지요. 그 아름다운 화음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세상에 온전히 똑같은 것은 없기에 각자의 목소리가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름이야말로, 우리가 오늘도 서로에게서 배우고, 함께 울고 웃는 이유가 되어줍니다.
다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더 깊은 내면의 풍요로움을 실감하게 됩니다. 삶의 조화를 이루는 화음은 결코 단일 음색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서툴지만, 혹은 어지럽고 복잡해 보일지라도, 여러 음이 섞이는 과정에서 마침내 우리의 존재가 더 온전해지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무늬 깊은 관계가 형성되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다름을 존중하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어, 한 발 더 성숙한 내면으로 걸어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새벽이 찾아왔을 때, 그때의 개 짖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를 마음 열고 들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다름이 주는 아름다움을 경험했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어우러지며 한층 풍요로워진 내면은,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동시에, 더 깊은 공감과 이해의 길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 길 위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풍경이, 바로 이 세상이 얼마나 오묘하고 다채로운지를 증언해 주겠지요. 결국 다름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그리고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선물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