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직장 문화에는 여러 가지 갈등 요소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묵직한 건 ‘사장이라는 존재를 넘을 수 없다’는 암묵적 규칙이다.
사람들은 회사에 들어가면 월급이라는 확실한 대가를 받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고 성취감을 얻고 인간관계를 넓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가끔은 회사 밖에서 더 인정받거나, 전문적·인문학적·철학적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 사장보다 ‘더 빛나는’ 일을 하게 될 때, 조직 안에서 그를 향한 미묘한 반감이 생긴다는 게 현실이다.
취업 포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상사 혹은 사장의 비합리적 간섭이나 견제’를 겪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기분 나쁜 말 한마디’ 정도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가까운 양상을 띤다. 상급자는 직원이 가진 탁월함을 인정하되, 그 탁월함이 자신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불편해한다. 말로는 “역시 실력이 좋다”며 칭찬하지만, 막상 조직 내에서 특정 직원이 개인 브랜딩으로 유명세를 얻거나 여러 방면에서 활약을 보이면, 시선이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는 ‘급여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라는 명확한 권력 구도를 띤다. 표면적으로는 일을 잘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실제론 ‘너무 잘난 부하직원’은 사장 입장에서는 위협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직원들은 두 가지 노동을 동시에 수행한다. 하나는 본연의 업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윗사람의 위신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적당히 감추고 약해 보이려 애쓰는 정신적 노동이다.
이런 현상이 특히 심한 곳이 계급사회가 뚜렷한 군대나 경찰, 공무원 조직이다. 계급장이 달려 있는 구조에서는 상하관계가 절대적이다 보니, ‘사고력’과 ‘창의성’이 뛰어난 부하직원은 권위를 흔드는 불안 요소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실제로 여러 간부급 인사들이 “조직은 혼자서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뛰어난 인재가 돋보이지 않도록 은근히 누르거나, 과도한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통계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확실한 해법은 쉽지 않다. ‘갑을 관계’가 워낙 공고하고,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서열 의식도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다. 다만 점점 더 많은 직장인들이 이 불편한 진실을 자각하고, 일련의 부당함과 무언의 압박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또, 자기 계발과 개인 브랜딩에 힘쓰는 MZ 세대의 등장은 이미 곳곳에서 상하관계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지”라며 체념한다. 하지만 몸을 낮춰야만 살아남는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사장을 절대로 넘어서지 말라’는 불문율을 깨부수는 힘은, 결국 각 개인의 작은 변화와 연대에서 비롯될 거다. 비록 오늘도 직장에서 눈치를 보고,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내가 너무 튀지는 않았나” 되돌아보며 퇴근할지라도, 그 순간에도 우리 사회는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모든 직장인이 마음 한 구석에서 “그래, 이게 진짜 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 미묘한 불편함을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이야기할 때, 궁극적으로는 조직문화 역시 달라질 가능성이 생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사장보다 ‘더 높이’ 인정받아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꾼다. 물론 그 꿈이 언제 실현될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문제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변화의 첫발을 뗀 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