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경남 창녕의 깊은 골짜기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의 땀 냄새가 내 유년의 공기였다. 햇빛에 그을리고 거칠어진 손등을 보며, 나는 세상에 저렇게 단단하고 든든한 사람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농사일을 멀리한 뒤 부산으로 올라와서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새벽같이 일어나 가족이 깨어나기 전부터 하루를 시작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나는 어렴풋이 “위대함”이라는 단어와 겹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긴 세월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스며든다. 이젠 팔십 중반이 되신 아버지의 어깨는 예전처럼 곧게 뻗어 있지 않고, 깊이 파인 주름마다 고단했던 세월이 옅은 그림자처럼 새겨져 있다. 4년 전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신 후, 아버지의 하루는 뒷동산을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해 내려오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루 끼니는 그저 ‘허기를 달래는 일’이 되어 버렸고, 어머니의 정성 어린 밥상에서 늘 나던 구수한 국물 냄새는 아버지 기억 속에서만 아련히 살아 있다.
나는 어느덧 수도권에 정착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두어 달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아버지를 찾아뵙고 하룻밤 묵고 오지만, 발걸음을 돌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쓰려 온다. “더 자주 올걸, 조금 더 오래 있을걸.” 후회가 새록새록 올라오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버지의 눈가에 어느새 물기가 맺히고, 그 모습이 나에게는 차마 눈 마주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미안하다.
부모라는 존재는 ‘주고만 싶어 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자식을 키우며 내게 남은 것이라곤 고단 함뿐이라며, 그래도 그 모든 수고를 “아깝지 않다”라고 말하던 아버지. 요즘 세상은 경제 논리와 젊음의 속도에 편향되어, 그 따뜻한 마음을 당연하거나 잊어버리고 사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부모를 모시는 일을 ‘부담’이나 ‘희생’으로 여긴다지만, 그 희생 속에 담긴 진심이야말로 인간이기에 가능한 가장 따뜻한 빛이 아닐까.
아흔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 마음 어딘가가 늘 울컥해진다. 나도 이제 예순을 넘기며 이곳저곳 몸이 성치 않음을 느끼는데, 아버지라고 오죽할까 싶다. 이 세상에 끈질기게 버텨 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온전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 저를 고아로 만들지 마옵소서.”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의 존재가 더 절실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부모가 건네준 그 한없는 사랑이 내 삶의 시작이었고, 또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아 줄 손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누구보다도 나를 믿어 주시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신 두 분이 계셨기에 내가 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떠나야 할 존재이지만, 그 떠나는 길이 너무 쓸쓸하지 않도록, 나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곁에 머물고 싶다. 언젠가 아버지의 빈자리가 내 삶에 찾아왔을 때도, 내가 걸어온 길에 늘 함께하시던 당신의 희미한 숨결과 따뜻한 눈빛을 잊지 않으리라 마음에 새긴다.
하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작은 손전등 하나를 들고 아버지의 기억 속 골짜기를 함께 걸어가고 싶고, 낡은 사진첩을 펼쳐두고 오래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 묻고 싶다. “아버지,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고아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이 마음 한 자락이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부모를 향한 내 마음이 조금은 전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