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리기‘ 권법

유연한 나무는 부러지지 않는다.

by 여자 말러리안

두 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사원증을 목에 걸고,

퇴근 후에는 다시 ‘나’를 찾기 위해 책상 앞에 앉는다.


이 길은 단순히 바쁜 삶이 아니다.

매 순간이 저항이다.


가장 먼저, 퇴근 후 남은 몇 시간을 최대한 쥐어짜야 한다는 압박은 늘 마음을 몰아붙인다.


주변의 시선도 피할 수 없다.

“왜 그렇게까지 살아?”

아무렇지 않은 듯 던진 말들이, 생각보다 깊게 남는다.


그럴수록 더 버티려고 한다. 더 밀어붙이고,

더 버텨낸다.

마치 이 저항을 견디는 만큼 내가 더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음악 앞에서는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연습을 하다 보면 유독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날이 있다.

악기는 무겁고, 손은 따라주지 않고, 잡념과 현실의 문제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손가락은 돌아가지 않고,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 같을 때.


이때 억지로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면,

소리의 공명은 사라지고 차갑고 텁텁한 바람소리만 남는다.


그제야 알게 된다.

무조건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이럴 때 내가 하는 선택은 단순하다.

멈춘다.


악기와의 싸움을 멈추고, 굳어버린 몸부터 푼다.

대단한 연주를 하겠다는 욕심도,

오늘 해야 할 ‘투두 리스트’도 내려놓는다.

대신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시작한다.

호흡을 돌아보고, 나의 몸을 확인한다.

어깨근육이 경직되어 있는지, 호흡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다음 완성하지 못한 하루에 대한 책임감은 연습실에 두고 나온다.



나는 이를, ‘납작 엎드리기 권법’이라 부른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 나를 덮쳐올 때. 차라리 내가 먼저 바닥에 몸을 낮춘다. 힘을 빼고, 저항하지 않는다.


그렇게 몸을 낮추면 공격처럼 느껴지던 감정들도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거센 저항 앞에서 끝까지 버티다 부러지는 나무보다,

땅에 닿을 듯 몸을 굽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버드나무처럼 살기로 한다.


이건 비겁한 항복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가장 영리한 방법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