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수록 더 깊게 채워지는 것들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

by 여자 말러리안

요즘 읽고 있는 한병철의 저서 『에로스의 종말』에서는 모든 것이 성과로 치환되는 사회를 경고한다. 거기서 자아는 타자를 만나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성과내기에만 몰두하며 '동일자의 지옥'에 갇힌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얼마나 좋은 소리를 내는지,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통제하는지에 매몰될수록, 내 안에서 음악이라는 '에로스'와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병철은 에로스란 지독한 나를 비워내고 깨뜨릴 수 있는 타자를 마주하는 것, 즉 강렬하고도 파국적이기까지한 하나의 사건이라 설명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한병철이 강조한 '부정성(Negativity)'의 회복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더 잘 해내려는 '긍정적 의지'를 잠시 멈추고,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하지않음이 나에게는 ‘비움’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마음을 편히 먹자는 위로가 아니다. 내가 음악을 통제하고 휘두르려는 짓을 멈추고, 음악이라는 타자가 들어와 내 삶을 뒤흔들 수 있도록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사색적인 멈춤이다. 나를 깨뜨려 타자를 초대하는 것, 그것이 음악 안에서 내가 실천해야 할 진정한 에로스의 회복이었다.


그동안 나의 음악은 “나”라는 거대한 자아를 증명하는 성과에 불과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소리를 내는지,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이 곡을 통제하는지에 매몰될수록 음악은 점차 자리를 잃어갔다. 자아가 모든 것을 장악하려 할 때, 역설적이게도 음악이라는 타자가 비집고 들어올 틈은 사라지고 만다. 결국 예술이란, 잘하려고 애쓰는 나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그 견고한 자아를 깨뜨려, 음악이라는 타자가 들어와 내 삶을 뒤흔들 수 있도록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일이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겠다는 오만을 버리고 나를 비워낼 때, 비로소 음악이 공명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내가 실천해야 할 진정한 에로스의 회복이었다.


음악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들어주는 이가 없는 연주는 공허한 소리의 파동일 뿐이다. 결국 음악이란 타자와 공유하기 위한 신성한 경험이며, 그 시작은 기교가 아닌 비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당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 사랑이든, 업무든, 혹은 고질적인 불안이든 “할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타자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비워보자. 기어코 해내려는 의지를 비워낸 자리에, 생이 준비한 뜻밖의 선물이 도착해 있을지도 모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