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가 아닌 '가심비

자본주의라는 공장에서 ‘나’라는 작품을 지켜내는 법

by 여자 말러리안
예술
: ‘특별한 재료나 기교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혹은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

사전은 예술(藝術)을 이렇게 정의한다. ‘특별한 재료나 기교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혹은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 우리는 대개 이 정의에 가로막혀 예술을 우리 삶과 분리한다. 예술이란 모름지기 화려한 무대 위나 미술관에 박제된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예술을 전공한다는 것은 사실상 ‘가난’을 선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들은 자녀가 예술을 하겠다고 하면 일단 만류하고 보며, 행여나 내 아이에게 예체능적 재능이 있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사회는 예술가를 자본주의에서 밀려난 무용한 존재로 분류한다.

나 역시도 악기와 씨름하던 그 시간들이 당장의 내 지갑을 채워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성비’를 묻는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이동 수단을 선택할 때도, 심지어 누군가를 만날 때조차 우리는 투입 대비 효율을 따진다. 가성비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합리적인 지표 같지만, 기묘하게도 그 지표를 충실히 따를수록 마음은 더 가난해짐을 느낀다. 효율적인 선택이 반드시 행복한 선택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배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예술을 그저 사전 속 정의처럼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일'로만 한정한다면, 예술가는 영원히 자본주의의 패배자로 남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예술의 진짜 의미를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상태’ 그 자체에서 다시 찾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높은 경지’란 단순히 악기를 잘 다루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반응’을 넘어, 내가 주체가 되어 ‘응답’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퇴근 후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며 넷플릭스의 메인 창을 떠도는 시간은 마치 달콤한 휴식처럼 느껴진다. 알고리즘이 권하는 선택지 사이를 오가다 보면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침대에 눕는 순간 밀려오는 것은 개운함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공허함이다. 자본주의가 설계한 알고리즘은 우리가 깊이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보여주는 대로 소비하고 흘러가는 대로 머물기를 권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철저히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한다. 그 시간 속에 ‘나’의 주체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주체적인 멈춤’을 요구한다. 알고리즘이 짜준 플레이리스트를 끄고 지금 내 기분에 맞는 단 한 곡을 직접 골라내는 것,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가 아니라 건강한 재료를 고르고 허술하더라도 나를 위해 요리하는 것, 혹은 늘 걷던 빠른 길 대신 오늘따라 마음이 끌리는 골목으로 한 걸음 꺾어 들어가는 것. 이 사소한 ‘의도’가 개입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선 ‘예술적 행위’가 된다. 알고리즘의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 ‘표류’라면, 나의 의도로 공간과 시간을 채우는 예술은 ‘항해’다.


우리가 예술을 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공허함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감각을 상실했을 때 찾아온다.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나의 주체적 선택으로 무언가를 느끼고 만들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시스템의 부품이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회복된다. 가성비 좋은 넷플릭스보다 가심비(價心比,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 넘치는 예술적 순간이 우리에게 더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이 관점에서 예술이란 "나라는 재료를 가지고 '나의 삶'이라는 무대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내는 퍼포먼스"다. 자본주의가 규정한 '성공한 작품'이라는 결과론적 굴레에서 벗어나, 매 순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태도야말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도 위대한 예술은 아닐까?


내가 오늘도 악보와 씨름하고 서툰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공장 안에서 규격화된 부품으로 마모되지 않도록 나를 지켜내는 투쟁이며, 시스템이 내 삶을 대신 지휘하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나는 오늘도 삶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응답하는, 이 고귀한 ‘기술’을 다시 배우고 있다.







가심비(價心比) :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 내 마음이 얼마나 흡족한가를 최우선으로 두는 주체적 선택.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