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이라는 이름의 명기(名器)

습도 1%에도 반응하는 악기처럼, 섬세하게 세상을 감각하는 당신에게

by 여자 말러리안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살면서 이 말을 칭찬으로 듣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까다롭다거나, 유난스럽다거나, 혹은 함께하기 피곤하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섞여 있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서 '예민함'은 극복해야 할 성격적 결함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내 안의 예민한 센서가 발동되기 전에 그것을 억누르며 둔감하게, 어떤 환경에서도 묵묵히 버티기 위해 무뎌지려 애쓴다.

나 역시 예민함의 극치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럴 때마다 마치 예민함은 내가 고쳐야 할 커다란 결점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결국 그 '피곤한 감각'이었다. 남들이 대충 넘기는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기도 했고, 때로는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사소한 말과 뉘앙스에 상처받았던 날들도 많았다. 나의 이 예민함은 나를 남들과 다르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끊임없이 소진시키는 주범이기도 했다.


현실 세계에서의 예민함은 대개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희한하게도 클래식 음악계에선 이 예민함이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예를 들어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전설적인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와 '과르네리 델 제수(Guarneri del Gesù)'처럼 말이다.

이 악기들은 지독할 정도로 예민하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주변 환경에 반응한다. 습도와 온도가 단 1%만 변해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전혀 다른 먹먹한 소리를 낸다. 반대로 조금만 건조해지면 나무가 수축하며 판이 갈라지는 '크랙(Crack)'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다루기 까다로운 결점이야말로 이 악기들이 수십억 원의 가치를 지니는 이유다. 주변 환경과 연주자의 컨디션에 기민하게 반응하기에, 거장의 손길이 닿았을 때 비로소 다른 악기들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깊고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상 그 누구도 이 악기들을 향해 "왜 이렇게 나약하냐"거나 "성격이 까다롭다"고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 예민함을 '살아있음'의 증거로 칭송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악기를 고치려 드는 대신, 악기의 상태에 맞춰 조심스럽게 환경을 조율하고 귀하게 대접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작은 자극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당신의 기질은 결코 고쳐야 할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라는 악기가 그만큼 정교하고 섬세하게 설계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타인의 감정을 기민하게 알아채고, 예술의 찰나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며, 남다른 디테일을 찾아내는 그 '민감함'은 사실 당신이 가진 가장 품격 있는 능력이다.


오늘 당신이 느낀 그 피로함과 상처는 당신이 가진 섬세함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클래식계의 명기들을 떠올리자.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비명을 지르는 건 그 악기가 못나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울림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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