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아니라 불씨를 지키는 일
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1년 조금 넘게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직장 동료들도 좋았고 일도 재미있었다.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자리였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고, 무엇보다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오전의 시간'이 절실했다.
두 달 동안 생계와 병행이 가능한 새로운 직장을 찾았다. 시간도 필요했고, 돈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겨우 그 두 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고, 미뤄둔 운전면허 교육까지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삶은 생각처럼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이른 아침 운전 교육을 받고, 직장에서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저녁엔 더 이상 남은 여력이 없었다. 레슨을 다녀온 날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연습을 하려고 앉아도 집중력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잠들기 전에는 "과연 이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새 직장에서의 업무는 때로 부당하게 느껴질 만큼 버거웠고, 운전대는 목과 어깨를 잔뜩 굳게 만들었다.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과 확신 없는 불안이 나를 덮쳤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을까. "열정은 지속성이다"라는 구절이 머릿속을 스쳤다. 열정은 어떤 화려한 순간이나 확신에 찬 뜨거움이 아니라, 이토록 잘 풀리지 않는 날들 사이에서도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힘을 말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 '잘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계속하는' 사람임은 분명했다. 돌아보니 떨어질 줄만 알았던 운전면허를 땄고, 지휘는 아주 조금씩 갈피를 잡아가고 있으며, 새로운 일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다.
한때 나는 열정이란 강하게, 눈에 보이게 타올라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때로는 활활 타오르다 재만 남은 순간들도 있었다. 꿈이 나를 먹어삼켜 정작 나는 사라져버린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열정은 크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꺼지지 않도록 불씨를 지켜내는 일에 가깝다는 것을.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게 조금씩 장작을 더해주고, 약해진 기운에 조심스레 바람을 불어넣는 이 수고로운 지속이야말로 열정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포디움 위에서, 눈에 띄지 않는 불씨 하나를 지켜내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지키고 싶은 가족일 수도, 퇴근 후 펼쳐보는 한 권의 책일 수도, 혹은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사소한 꿈일 수도 있다.남들이 보기엔 미약해 보일지라도,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버거운 하루를 견뎌낸 당신이라면 이미 충분히 뜨거운 사람이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보다, 소리 없이 이어지는 이 끈질긴 '계속'이 결국 우리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