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무거움을 선택하는 일

취향은 근거가 될 수 없다.

by 여자 말러리안

내가 음악을 시작했던 건 아마도 20년 전,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음악을 공부했고, 한동안은 그로부터 멀어져 지내기도 했다. 연주자로, 때로는 감상자로. 나는 음악 안에서 여러 역할을 돌고 돌아 다시 이 자리에 섰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이름으로 음악 앞에 서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감상자는 선율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마음속에 호불호를 정해본다. "내 스타일이 아니야" 혹은 "그냥 좋아"라는 단순한 직관만으로도 자신의 취향을 쌓아가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지휘자는 다르다. 지휘자는 단순한 호불호의 영역에 머무는 것을 넘어, 어떤 선택이든 설득과 설명, 그리고 명확한 근거를 필요로 한다. 왜 이렇게 해석되어야 하는지, 왜 이런 소리가 구현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납득함과 동시에 단원들과 객석의 관객들까지 설득해내야 할 '무거운 책임'을 가진다.

지휘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그 책임의 무게를 조금씩 실감한다. 시작할 때의 설렘과 벅참은 아마 빙산의 일각이었을 것이다. 수면 아래에는 훨씬 더 크고, 알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 한껏 웅크리고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금 바다 속에 가려진 그 무겁고 방대한 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중이다. 누군가 차려놓은 음악을 즐기는 안도감을 기꺼이 포기하고, 스스로 그 무거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지휘의 진짜 모습이다.


사실 이건 비단 음악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그냥 좋은 것'을 넘어 '기꺼이 그 수고로움을 감당하고 싶은 대상'을 마주하는 순간을 겪는다. 가볍게 시작한 사랑이 책임감이 되고, 즐거웠던 취미가 누군가를 책임지는 업(業)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대상의 진짜 무게를 체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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