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박자 앞선 친절

지휘자는 현재에만 머물 수 없다.

by 여자 말러리안




"어떤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



첫 지휘 레슨, 던져진 질문 앞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수많은 수식어가 머릿속을 스쳤지만, 하나를 골라내기엔 난 이제 막 지휘자의 길을 결정한 풋내기였다.

망설이는 내게 선생님은 의외의 문장을 덧붙였다.


"친절한 지휘자가 되세요."


여기서의 '친절'은 부드러운 말투나 물렁한 태도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십 명 연주자의 호흡과 상황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들이 내딛을 다음 발걸음을 미리 마중 나가는 치열한 배려에 가깝다.

지휘는 손기술이기 전에, 누구보다 한 발 앞서나가는 일이다. 연주자들이 '현재'를 노래할 때, 지휘자의 머릿속은 언제나 그다음 마디, 그다음 프레이즈에 가 있어야 한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배의 항해사나 조종석에 앉은 파일럿처럼 말이다.

음악보다 반 박자, 반 걸음 먼저 서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사실. 지휘의 첫 연습은 지휘봉을 쥐는 법이 아니라, 내 생각의 속도를 통째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결국 알게 되었다. 지휘자가 한 발 앞서야 하는 것은 소리만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연주자들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어느 순간 주저하고 있는지를 미리 헤아리는 것. 그것이 지휘에서 말하는 배려의 가장 고독하고도 다정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자주 보고, 자주 떠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음악은 가슴에 새겨진다. 이 지독한 반복을 견디는 이유는 결국 그 안에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지휘자는 자기 자신이 아닌, 끊임없이 타인과 음악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기꺼이 먼저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 한 박자의 거리를 메우기 위해 다시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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