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되지 못해 알게 된 것들

좋아하는 마음도 재능이다.

by 여자 말러리안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늘 화려한 조명 아래 있었다.

눈을 감으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무대 위, '최연소', '아시안 최초' 같은 수식어를 단 내가 서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문대의 정문을 당당하게 걷는 꿈을 꾸며, 나는 내가 당연히 '천재'여야 한다고 믿었다. 아니, 천재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친절하지 않았다. 진짜 '천재' 같은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확신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그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 나의 노력은 한없이 얄팍해 보였다. 결국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천재가 아닌 것 같아. 그러니 음악을 할 자격도 없지 않을까.'


그렇게 음악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도망치듯 직업을 바꾸고, 음악은 그저 일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러다 직업적 필요에 의해 클래식 음반들을 찾아 들어야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직업적 욕심으로 들었지만 어느 순간 매일 탐욕적으로, 강박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예고 시절, 음대 시절에도 이렇게까지 클래식을 많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의무감으로 시작한 청음의 시간들이 쌓일수록, 나는 내가 음악을 예전보다 더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수많은 연주자를 만나고 다양한 해석을 접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좋아하는 것도 재능이 아닐까?'


남들은 지루해할 법한 교향곡의 한 대목에서 전율을 느끼고,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음반을 찾아 헤매는 이 집요함. 무엇인가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그것을 멈추지 않고 향유하는 힘. 일반인들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이 '몰입'이야말로 내가 타고난 가장 귀한 재능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의 나는 '천재'라는 거대한 완벽주의의 성벽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있었다. 그 성벽을 넘지 못하면 음악을 할 자격조차 없다고 믿으며, 매일 나를 검열하고 채찍질했다.


여전히 나는 천재가 아니다. 객관적으로는 천재가 되지 못한 사실에 슬퍼해야 마땅할 텐데, 지금의 나는 오히려 충만함을 느낀다. 천재는 세상을 놀라게 하지만,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화려한 유리성에 입성하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 내가 발견한 선율 하나에 온 마음을 다해 감동하는 법을 배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방황하는 이들에게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하나를 정해 많은 시간과 경험을 쏟아부어 보라고. 그 끝에 남는 '좋아하는 마음'은 그 어떤 기술보다 강력한 당신만의 재능이 되어줄 것이라고.

천재가 되지 못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정복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 곁에서 평생 행복할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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