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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젤리 Apr 07. 2024

네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라

도쿄일기 - 여행 3일 차,  카구라자카의 호스텔 침대에서

일기 쓴 장소: 두 번째 숙소 "언플랜 카구라자카"

날짜/ 시간 : 24년 3월 20일 밤 11시

숙소의 아늑한 내 공간


여기 침대가 적당히 단단해서 좋다.

오늘 하루 굉장히 금방 지나간 기분인데, 아침에 빵집과 카페에 간 게 정말 오래전 일 같다.


오늘은, 오늘도 라고 하는 게 더 맞으려나, 쇼핑을 했다.

사람 많은 곳에 오래 있다 보니 지친다.

내일은 정말 사람 없는 곳을 찾아가서 쉴 거다. 근처에 커다란 공원이 있던데 거길 가야겠다.

벚꽃도 슬슬 펴 있지 않을까. 아니다, 아직 날씨가 추워서 안 폈을 것 같다. 벚꽃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저 탁 트인 공간에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중간에 실망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스파게티 전문 체인점인 스파게티 판쵸 신주쿠점에 가서 오랫동안 기대했던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기대 이하였다. 내가 나폴리탄에 왜 이렇게 기대가 컸냐면, 나폴리탄은 내가 혼자 자주 만들어 먹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다. 언니도 내가 해준 나폴리탄을 되게 좋아해서 종종 해달라고 말할 정도로 내가 요리한 나폴리탄은 꽤 먹을 만하다. 그래서 그 음식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먹는 나폴리탄은 얼마나 맛있을까! 엄청 엄청 기대하면서 이번 도쿄여행에서는 꼭 먹겠다고 다짐하고 온 거란 말이다. 특히 이 가게 구글 리뷰에 극찬이 쓰여있었어서 더 기대가 커졌다. 첫 입 먹고 나면 "우와 역시 진짜 맛있다0.0"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 리뷰에 그 정도는 아니라고 댓글을 쓰고 싶을 정도였다. 그냥 배고프니 먹게 되는 그런 맛이었다. 식당이 지하에 있어 계단 통로에서 지하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도 별로였다. 여기 말고 옆에 있는 킷사텐(일본의 다방)을 갈 걸 그랬다. 다음에 신주쿠에 와서는 킷사텐에 가야지. 아무튼 이제 한국에서 내가 만든 나폴리탄에 자긍심을 느끼며 먹을 수 있겠다. 아무래도 내가 원조보다 더 잘 만드는 거 같다.


이런 실망스러운 장소도 있었지만,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장소도 있다.

일본 전통 차를 파는 Ocharaka라는 곳이다.

일본어를 되게 잘하는 프랑스인 아저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그 아저씨는 말이 빠르고 많으면서 되게 유쾌하셨다. 내가 들어가니 '네가 도망 못 가게 문을 닫을 거야'라면서 원래 닫고 계시던 문에 괜히 농담을 덧붙이시는 분이다.

차에 대한 지식과 애정의 깊이가 공간에서도 느껴졌다. 이곳에서 쿠기차와 녹차를 샀다. 쿠기차는 차 줄기로 만든 차라 카페인이 없다고 한다. 밤에 가끔 차가 먹고 싶을 때가 있어서 그때 마시려고 샀다. 찻잎은 잘 보관하는 게 중요하다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찾아봐야겠다.


방문해서 뿌듯했던 다른 장소는 TOKY.

Benjiplant라는 유튜버의 영상에서 나온 화분이 너무 이쁘고 갖고 싶어서 간 곳인데, 원하던 그 화분은 없었다.

아마 Benji가 다녀오고 난 뒤 나 같은 구독자들이 와서 사 간 거 아닐까. 그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정교한 게 딱 내 꺼였는데!

비슷한 느낌으로 Gravity라는 제목의 시리즈 화분 중에 하나를 골랐다.

얇은 줄기를 가진 앙상한 식물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나의 쇼핑은 멈추지 않는다.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지갑이 한 번 열리니 잘 닫히질 않는다.

내가 일본 오면 꼭 사고 싶은 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TOKY 화분이고, 나머지 하나는 운동화였다.

운동화를 어디서 사야 하나 찾아보다가 하라주쿠에 아식스 플래그쉽 스토어가 있대서 가봤다. 하, 맞아. 생각났다. 내가 여기서 기가 빨린 거다. 거리와 가게에 사람들이 엄---많았다. 

그래도 신발을 사겠다는 목표를 이루려고 꾸역꾸역 가게를 돌아봤다.

첫눈에 반한 운동화는 내 사이즈가 품절됐대서 그다음으로 마음에 든 운동화를 샀다.

시간 지나고 생각해 보니 첫 번째 꺼보다 이걸 사길 참 잘한 거 같다! 엄청 맘에 든다! 일단 밝은 색 운동화가 없었는데, 봄 여름에 신기 좋은 신발이 생겨 기분이 좋다. 그리고 이게 Japan limited version이라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뿌듯하다. 빵꾸 뚫릴 때까지 신어야지.


하라주쿠에 마침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파타고니아 빈티지샵이 있대서 가봤다.

파타고니아는 자원순환을 위해서 파타고니아의 중고 옷을 온오프라인에서 공식으로 팔고 있는데, 그게 오프라인으로 구현된 곳이다. 아마 아시아에는 일본이 유일할 거다.

공간 곳곳에서 뿜어 나오는 파타고니아의 긍정적인 기운에 기분이 슬쩍 좋아지면서, 에너지를 조금은 충전할 수 있었다.

옷 가격은 내 기준에서는 비싼 편이었다. 중고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흰 반팔티가 7만 원 정도였으니 말이다. 브랜드 밸류는 차치하고 친환경적인 소재와 윤리적인 고용방식의 가치가 제대로 부여된 상품 가격은 이 정도구나, 싶었다.

친환경은 사실 불편한 주제다. 생각이 많아져서다. 불편하지만 피하고 싶진 않다.  


일기를 쓰고 보니 참 많이 돌아다녔구나. 지칠 만도 하다.

아침부터 새 숙소로 이동하느라 하루를 일찍 시작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졸리다.. (잠 듦)


오늘 아침 Akha Ama Coffee 카페에서 읽은 책 Wild Problems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

이 관계에서 내가 충분히 득을 보고 있는지 의문을 품거나 걱정할 게 아니라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즐겨라. 운이 좋거나 정말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서약의 원칙을 충분히 우선시할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희생도 더 이상 희생이 아니다. 처음에는 희생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파트너십이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희생이 곧 행복한 습관으로 바뀐다.

내 삶을 보는 방식을 바꾸면 어느 영웅적 인물 한 명의 스토리가 아니라 하나의 앙상블로 보게 되면 더 좋은 친구, 배우자, 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편협하게 개인적 만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위험하다는 내용은 이 책이 꽤나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다. 그런데 정말로 그게 그렇게 위험할까? 물론 우리는 나 자신도 잘 챙겨야 한다. 다만 내 말은 첫눈에 얼핏 보이는 게 여러분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극히 편협하게 자기 자신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칠지도 모른다.

네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라.  -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Wild Problems)




크로와상이 맛있기로 유명한 숙소 근처 빵집. 아침부터 줄이 길다


빵집 근처 라떼 맛집 AKHA AMA COFFEE, 공정무역으로 원두를 수입하는 곳
멋진 화분과 식물로 가득한 TOKY
여기저기 돌아다닐 땐 도쿄매트로패스가 최고
문제의 나폴리탄 스파게티, 누군가에겐 맛있을 수 있다
Ocharaka, 즉석에서 내려주신 쿠기차 맛이 참 좋았다
1시간 이상 있을 자신이 없는 하라주쿠의 인파
예쁜 내 신발
따뜻한 분위기의 파타고니아 아울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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