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가방을 사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약 13년 전
신혼 여행지였던 파리에서 산 샤넬백 하나가 있다.
그때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파리로 여행을 간 이상
샤넬백 하나 사 와야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이 샘솟았다.
마침 시어머니께서 사고 싶은 것을 사라며
300만 원을 용돈으로 주셨고
나는 그 돈을 가지고
샤넬 파리 깜봉점을 방문해 샤넬백을 샀다.
그때는 명품 자체도 잘 몰랐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샤넬에서 어떤 가방이 대표 모델인지
어떤 스타일을 살지 조차 정하지(검색해 보지) 않고
무작정 매장을 찾았다.
눈에 불을 켜고 메인백을 사겠다고 몰려들던
중국인들 사이에서 쭈뼜쭈뼜 용케 내 예산에 딱 맞는,
마음에 드는 가방을 찾았다.
그러고는 가방을 사기 위해
태어나서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되었다.
직원분이 정성스럽고 화려하게 포장해 준
샤넬백이 든 샤넬 쇼핑백을 들고
남들처럼 매장 앞에서 인증샷도 찍었다.
그렇게 나에게도 샤넬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행여나 청소하러 들어온
호텔 직원분이 나쁜 마음을 가지게 될까 봐
캐리어 깊숙이 넣어두고는 여행 내내
꺼내보지도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괜한 우쭐함과 교만함으로
회사에 들고 가면 다른 직원들의 눈에
거만해 보일 수 있으니
절대 들고 가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의 샤넬백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만 한 번씩,
조심스레 꺼내 드는
상전 아닌 상전이 되어 있었다.
지하철을 타면 눌러질까 봐 걱정되고
행여나 망가질까 봐 외출 시 공용 회장실 문에 달린
고리에는 걸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부딪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손으로 막아대며 참으로 애썼다.
(나 스스로, 나의 샤넬백을, 그토록 의식하며
노심초사 유난스럽게 다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산 샤넬백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아주 고가의, 유명한,
샤넬의 메인 디자인 백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신기하게 그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나는 적당히 겸손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샤넬백은 기능적으로 변했다.
크기가 커서 책 한 권이 거뜬히 들어가서 좋았고,
체인이 길어서 두터운 겨울 외투 위에도
편하게 맬 수 있어 좋았다.
드디어 제 용도인 '가방'의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그래서 옷이 두툼해지기 시작하면)
샤넬백을 꺼내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을 함께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함께 비를 맞고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눈도 함께 맞는다.
지하철 안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요즘은 출근길 둘째의 베개가 되어 주기도 한다.
편하게 쓴 만큼 나의 샤넬백은
여기저기 스크래치가 생겼고 마모되었다.
가끔은 그 모습이 부끄러워 손으로 가린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비싼 명품가방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게 되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명품에 대한 한계를
깨닫게 된 것도 한몫했다.)
높이 보고자 하면 끝없이 높은 것들만 있다.
그렇기에 값비싼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우월감은
훨씬 더 높은 위치에서 바라보았을 때,
한없이 경솔하고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이 가진 것이 최고인 줄 알고 우쭐되는 것,
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해 우울해하는 것,
둘 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날 내가 느꼈던 이 감정들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어리석었던 것들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가진 물건들의 가치를
내가 얼마만큼 잘(자주) 활용하는가로
평가하곤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샤넬백은 본전 이상의
값어치를 한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가방을 사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것만 가지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