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의 추억

by 오이향

나는 별로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특별하고 싶어 한다. 이건 비극이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특별하고 싶어 하는 건 많이 애달프기 때문이다. 내겐 그렇게 애달픈(그리 편하지 않은?ㅎㅎ) 도전이 몇 번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

20대였나? 국내여행으로 부여와 공주로 2박 3일 떠났던 첫 여행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고 혼자 여행을 그리 즐기진 않는다. mbti 성향으로 E가 아주 조금 더 많은 매우 적절한 타입이라고나 할까?^^ 여행 유투버 빠니보틀이 “혼자 하는 여행이 좀 지쳐서 누군가 함께 하고 싶었다.”며 지나치듯 하는 말을 들었다. 초보지만 너무 잘 알 것 같아선지 그 말이 크게 들렸다.

무엇이든 처음의 경험은 항상 필요하다. 두렵지만 그다음으로 나아가는 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첫 홀로 여행의 경험과 예기치 않은 코로나는 나에게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선물했다.

설명하자면 내 직장의 승진자 집합교육의 이야기다. 코로나의 기세가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할 때였다. 교육이 사상초유의 비대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른바 재택, 있는 자리에서 오롯이 6주를 보낼 위기에 처했다. 위기를 기회로, 뻔한 말이지만 좋아하는 말이다.

제주도 사람은 제주도에서 재택교육을 받을 것이다. 나는 교육기간 중에 제주도 사람이 되기로 했다. 숙소를 알아보고 차량 탁송 방법도 검색했다.

성산 일출봉 밑에서 지냈다. 새벽이면 일출봉에 올랐다. 매일 오르리라던 다짐은 지키지 못했다. 33일 중에 고작 4번이었나? 이유는 단순하다. 새벽에 가면 입장료가 무료라는 말에 도전을 시작했는데 시각 맞추기에 몇 번을 실패하고는 어이없이 그냥 마음을 접고 말았다. 아침, 저녁으로 바닷가를 산책했다. 하루 만보 걷기 목적이 깔려있었지만 산책길 해가 뜨고 지는 풍광은 매일이 달랐다. 해가 뜨는 위치가 조금씩 변했고 노을이 지는 붉기도 달랐다.

일출봉에서 내려와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시인 김생진의 시비들이 공원처럼 조성된 곳이 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매일 지나치며 외웠다. 바닷가 맥주집에서는 제주 위트에일과 페일에일을 처음 만났다. 시인처럼 파도를 보며 마셔보기도 했다. 수업이 빨리 마치는 날은 책방 지도를 들고 책방 투어에 나섰다. 스탬프 찍는 재미와 한 두 권의 책을 사는 재미로 다녔다. 오래오래 책도 읽고 커피도 마셨다.

내 인생에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김연수의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서 팸 이모는 사랑의 도피를 떠난 제주 정방동 136-2번지에서 함석지붕으로 내리던 빗소리가 사월엔 미, 칠월엔 솔까지 올라가더라고 했다. 다녀와서 수료생 수기에 공모했다. ‘시월의 라라라’ 나의 즐거움은 "라"까지 올랐다고 적었다. 상금도 받았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꿈만 같다.


나는 나의 첫 홀로 여행에 감사한다. 나에게 첫 떨림을 선사했고 혼자가 되는 용기를 갖게 한 여행이 있었기에 제주 한 달 살기도 용기 낼 수 있었다. 모든 처음을 응원한다. 오늘 시작한 나의 첫 행동이 언젠가 나를 바꿀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무엇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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