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그 푸른 하룻밤의 기록

by 오이향

‘모기의 수명은 며칠일까?’

잠자리를 준비하며 든 생각이다. 오늘은 시험과제 제출일이라 오후엔 여유시간이 좀 났다. 집에서 가져온 책 중에 건축가 승효상의 여행기 “묵상”이라는 묵직한 두께의 책을 들고 집을 나섰다. 얼마 전 바닷가에 봐 두었던 커피집이 생각났다. '제주에 왔다면 이래야지' 하는 마음이 컸다. 3시간 반을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마주 앉았다. 책 속에 승효상의 무리와 함께 유럽의 수도원도 돌아다녔다. 커피와 예의상(오랜 체류시간에 대한?) 시킨 우유 케이크는 의외로 맛이 좋아 기분까지 좋아졌다.

오늘 오후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이것저것 정리를 끝내고 인체 과학적으로 잠들면 좋다는 시간을 조금 넘기면서 문득 어제 그 불면의 밤이 떠올랐다. 어젯밤 발뒤꿈치며 손등을 물어대던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었다. ‘어제 그 모기가 아직도 내 방 안에 살아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모기의 수명이 궁금했다. 다행히 적당한 운동과 졸음, 거기다 잠들기 전 가벼운 어른 동화 같은 책을 골라 읽던 끝이라 오늘은 숙면하기를 기원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5분쯤 지났을까? 어제의 그놈이 나타났다. 놈은 내 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놈을 가격하려고 귀를 발작적으로 두어 번 내리쳤더니 이러다 나를 잡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행여 나의 그 헛발질에 장렬히 전사한 모기의 잔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베개며 이불을 털었다. 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모기의 수명을 검색했다. 72시간이었다. 이놈을 죽이지 못하면 아마 나는 내일 밤도 다시 불면의 밤을 보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밤이 길어질 것 같다. 일단 이불로 온몸을 감싸고 호흡할 최소 부위만 남기고 누웠다. 어쩐지 왼쪽 입술이 두툼해지는 느낌이다. 불을 켜고 거울을 보니 놈은 허락 없이 내 입술(의 피)을 가져갔다. 소리 없이 입술을 당했다. 그럼에도 나는 대책이 없다. 다시 이불을 덮었다. 그놈이 오고 나는 또 내 귓가 언저리를 속절없이 몇 번 더 가격했지만 소득 없이 끝이 났다. 이젠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예 먹잇감을 내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이 또한 나를 잡는 일임을 알았다. 숨이 막혔다. 불을 켜고 일어나 인터넷의 바다에서 도움을 받기로 했다


‘모기 퇴치하는 법’

일단 주파수로 모기를 쫓는 어플이 있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손전등 같은 것으로 찾아보는 방법, 불을 끄고 유인하라는 방법들이 있었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방구석구석을 비쳐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불을 끄고 유인하라는 방법은 방금까지 해봤지만 다른 수가 없어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침대에 앉아 얼굴만 내고 이불을 덮은 채로 앉아있었다. 제주도 성산포 바다를 앞에 두고 오밤중에 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다시 모기 소리가 났지만 잡지 못했다. 두어 번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그 ‘모기 쫓는 어플’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그거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어플을 다운 받았다. 모기가 달아난다는 그 주파수는 사람도 달아날 소리를 내었다. 뭐 모기만 듣고 달아나는 그런 신의 한 수가 아니었다. 댓글에는 ‘기분 탓이었는지 효과가 있었다.’는 의견도 있어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일단 어플을 실행하고 나는 소음 차단용으로 이어폰을 주섬주섬 찾아 귀에 꽂았다. 이어폰 너머로 모기소리 비슷한 소리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었지만 효과가 있다니 참아보기로 했다. 처음엔 10분을 예약했지만 소리를 참으며 3시간으로 늘렸다. 이렇게라도 3시간은 잘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발도 좀 이불 밖으로 빼고 얼굴도 맘껏 낸 상태로 누웠다. 귀에 꽂은 이어폰 줄이 목에 감긴 건 좀 거슬리긴 해도 모기보다는 나았다.

그러고 5분이 채 안되었을 것이다. 그놈이 또 나타났다. 어플의 소리와 확연이 구분되는 그놈의 소리. 참담했다. 불을 켜고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에서 어플부터 지웠다. 그런데 순간 침대 머리맡을 자세히 보니 모기란 놈이 구석진 자리에 보기 좋게 앉아 있었다. 휴지를 뽑아 들고 놈을 덮치는 순간 놈은 유유히 날아올라 내 시선보다 빨리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이제 나를 지킬 일은 저 놈을 손으로 때려잡는 방법뿐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블로거님들의 모기퇴치법을 다시 정독했다. 정신을 집중하니 그중 믿음이 가는 방법이 눈에 띄었다.

요약하자면 모기 소리를 듣고 불을 켜면 절대 찾을 수 없다. 모기 소리가 나면 불을 끈 상태로 손전등 같은 것을 이용해 근처에 잠복해 있는 모기를 찾으라는 것이다. 불을 끄고 다시 누웠다. 놈이 왔지만 내 얼굴을 내 손으로 가격하던 이전의 헛발질은 하지 않았다. 조용히 일어나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놈은 바로 옆에 있던 옷걸이 봉에 가느다란 몸을 안착해 있었다.

‘신이시여! 나를 도우소서.’


휴지를 쥔 손으로 놈을 내리쳤다. 놈은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동안 반복된 헛발질로 얻게 된 빠른 스피드와 숱한 경험자들에게서 얻은 기술력을 겸비한 결과였다. 그리고 나는 큰 대(大) 자로 잠들었다. 더없이 편안한 밤을 보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아무리 다른 조건을 개선해도 잠복해 있다. 모기의 수명이 하루살이가 아닐 것인데 은근 자연사하였기를 바랐다. 헛된 기대로 문제를 덮어 둔 대가였다. 나는 새벽까지 이어진 그 처절한 전투로 충분한 값을 치르고 서야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방안을 떠도는 날 것에 매우 민감해졌다. 제주 생활의 청산을 며칠 앞둔 어느 날엔가 앞 뒤 없이 잡고 보니 작은 새끼(욕 아님)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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