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어느 인연에 대한 이야기
이런 인연 또 있을까요?
자매는 아닙니다. 각자 조 씨와 고 씨 집안에 태어나 단지 밝을 ‘명’ 자를 이름의 가운데 글자로 쓰는
이른바 ‘남’입니다.
명숙이를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아마도 같은 반을 한 번은 했을 겁니다. 기억이 흐린 건 그만큼 친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졸업을 앞두고 내가 진학할 중학교로 배정된 인원은 나를 포함해 7~8명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 근처 중학교로 배정되었지만 나와 몇몇은 마치 제3지대로 밀려나는 듯 조금 떨어진 중학교로 진학했습니다. 어쨌든 명숙이랑 헤어진 유일한 3년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했더니 명숙이와 같은 학교였습니다. 여전히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을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명숙이는 또 같은 학교로 진학해 왔습니다. 대학까지 같이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행인지 학과는 달랐습니다. 사회과학대학과 인문대학은 건물도 멀고 자주 볼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교까지 가는 길이 같았습니다. 동네에서 학교까지 가는 유일한 버스 88번을 타면 등하교 길에 자주 만났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특이합니다. 탁하고 소리가 갈라진 데다 크기까지 합니다. 사정권 내에 그녀가 들어서면 어디에서도 그녀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특히 버스에서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면, 그때부터 나의 이름과 신상, 나의 모든 근황이 차를 탄 모든 사람에게 털리고 맙니다. 그녀는 말하는데 거침이 없고 눈치까지 없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전공을 살려 관련 분야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전공을 살리지 않고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근무하는 지자체로 그녀도 발령이 난 것입니다. 다행히 같은 근무지는 아니어서 여전히 친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씩 그녀를 만나게 되면 어디서나 거침없이 나를 불렀습니다. 다정하지만 너무 큰 소리로 나의 근황을 묻곤 했습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다행히도 나는 다른 자치구로 발령이 났습니다. 원치 않았지만 연고지 배치라는 미명아래 그런 때도 있었습니다. 드디어 나는 명숙이와 헤어졌습니다. 새로운 근무지에 적응이 될 무렵 관내 금융기관 지점으로 학교 선배가 발령이 나 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금융 상품도 팔아 주고 저녁도 한 끼 얻어먹을 요량이었습니다. 졸업 후 거의 처음 만난 터라 근황을 서로 주고받는데 그 선배의 가장 친한 친구의 처가 명숙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부동반으로 자주 만나는 사이라며 기회가 되면 같이 한번 보자 했습니다.
아니요.
거절의 대답이 너무 빠른가요?
그 후 그 선배를 몇 번 더 만났는데 항상 명숙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얼마 전 명숙이가 내가 사는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어쩐지 비슷한 얼굴을 오가며 봤던 것도 같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도 같은 동(棟) 바로 옆 라인에 살고 있었습니다. 활동시간이 서로 달라 잘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명숙이는 이미 내 물리적 생활환경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요즘도 명숙이는 동네 목욕탕이며 아파트 테니스장에서 한 번씩 출몰하곤 합니다. 이런 인연 또 있을까요? 이렇듯 오랫동안 끊임없이 직업이든 지역이든 같은 선택을 하거나 선택되지만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인연 말입니다.
명숙이 특정 개인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금은 먼 두 개의 평행선 같은 이 특별한 인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명숙이와의 인연이 어떻게 이어질지, 어느 지점에서 조금 가까운 사이가 될지 이제 궁금해지기까지 하네요. 기대하세요
※ 명희와 명숙이는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