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밑 어디선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 갈리는 소리, 이러다 턱뼈와 함께 얼굴이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턱관절 치과를 찾았다. 요즘은 모든 것이 노화의 산물이었건만 잘못된 식습관 때문이라니. 노화가 아니라는 말에 기쁨도 잠시, 그동안 무한히 뜯어댔던 오징어, 쥐포, 한치들의 망령들이 드디어 복수를 시작했구나 싶었다.
귀는 또 얇기가...... 의사의 설명이 자세할수록 증상의 200% 이상을 혼자 상상하며 치료에 돌입했다. 오징어 그리 씹다가는 턱 나간다던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시던 내 어머니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이를 수 있는 증상의 극단을 설명하는 의사의 말은 그 배로 새겨 들어서 덜컥 보철물을 맞추고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밤이 되면 입을 약간 벌려 놓는 효과가 있는 보철물에 고무줄까지 끼워 놓은 처지가 되었다. 잘못 보면 '양들의 침묵'을 찍는 중이다.
하루 종일 긴장된 출장 끝에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던 중이었다. 긴장이 풀려선지 뭐라도 읽고 싶은 마음에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개인용 램프까지 켜고 오롯이 책 읽기 너무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글자가 두 개 세 개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확실한 노화의 결과다.
정신일도하사불성. 떠다니는 글자들이 두세 겹이지만 읽을 수는 있다. 인공눈물까지 넣어가며 눈을 게슴츠레 뜨면 웬만하면 다시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머리가 아파왔다. 턱에 이어 눈까지 갈 판이다. 생각이 거기 이르고서야 책을 덮었다.
나는 왜 가장 추운 날 걷기를 선택하고, 한 여름에 인도 여행을 가고, 어두운 기차 안에서 그리 잘 읽지도 않는 책을 꺼내 읽어 대는 걸까? 모두가 잘 선택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스스로 느끼는 희열인가? 아니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열정이라도 바라는가? 나도 알 수 없는 이런 엉뚱한 선택들이 나를 만들어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내 몸 구석구석의 반란이 곧 일어날 나이가 된 듯하다.
얼마전 했던 나의 다짐, 뭐든 기어코 해내지는 않기. 안되면 안 하고 방향이 틀어지면 좀 틀어가고, 뭔가 열심히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턱과 눈에 이어 내 남은 여러 부위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오늘 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리. 비록 내일 눈 빠지게 뭔가를 해야 할 일이 닥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