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없는 삶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일제 때 항일투쟁까지는 아니어도 신사참배로 얼룩진 교회에 다닐 수 없다며 예배당에 불을 놓았다. 방화로 투옥되셨다. 천지분간 못하던 내 어린 시절, 세상 모든 사람이 주일엔 교회로 가는 줄 알았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고등교육을 받고 나니 세상에 눈이 트였다. 딱히 그렇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 나간 탕자처럼 세상을 따라 살았다. 어감이 어째 좀 그래서 다시 표현하자면 교회를 안 다녔다는 말이다. 그래도 사돈의 팔촌까지 기독교를 기반한 집안 탓인지, 106세로 생을 마감한 할머니의 오랜 기도 때문인지 나는 어디에 있더라도 종교는 '기독교'라 말하고 적는다.
언젠가 직장 상사 A에게 그저 화젯거리를 찾느라 요즘 무슨 책 읽으시냐고 물었다. 왜 묻냐는 듯 뚱한 눈을 하더니, '논어'라는 통에 그와 말을 한 동안 끊은 적 있다. 다시는 질문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잊히기도 했고 조금은 더 편해진 터라 다시 물었다. 이젠 제법 친근해진 표정으로 답했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
나는 이런 반전이 좋다. 붓다와 치명적인 것도 어딘가 반전인데 그것도 농담까지. '논어'와 달리 이 책은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어찌어찌 책을 구했다. 받고 보니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쉽지 않아 보인다.
금강경, 참으로 생소하다. 그나마 금강경 본론에 들어가기 전 사전해설서라니 다행이다. 한교수는 불교가 대중 속에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글을 열고 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겠구나 싶어 반갑다. 모르는 용어는 짧은 실력에 병기된 한자로 대충 그 뜻을 짐작한다. 그도 아니면 잘 구축된 인터넷 망의 도움을 받아 가며 읽는 중이다.
어제는 퇴근 후 4년째 다니는 필라테스 학원엘 갔다. 운동 전 식사 대용이라며 고구마에 삶은 계란까지 단단히 챙겨 먹고 함께 다니는 동료와 15분 거리를 걸어서 갔다. 필라테스 경력자 다운 타이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수업시간을 기다리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던 그때, 담당 강사가 부른다.
" 00님 오늘 예약 대기던데, 오셨어요? "
" 오마나, 확정이 안 됐나 봐요?"
이른바 대기자란 말이다.
타이트한 운동복은 벗기도 힘들다. 겨우 끼워 입었던 터라 그냥 겉옷만 걸치고 벗었던 옷가지는 가방에 욱여넣은 채 학원을 빠져나왔다. 항상 듣고 나오던 수고 하셨다는 말이 무색하여 뛰쳐나왔다. 얼마 전엔 운동복도 없이 학원 앞까지 갔다가 뒤늦게 집으로 직행했던 혼자만의 추억도 생각났다.
그렇게라도 공짜로 얻은 듯한 시간에 기분은 좋았다. 집에 가 내친김에 글이라도 몇 자 적어 볼까 하고 내 글쓰기 전용 의자를 보니 며칠 전 샀던 쿠션들이 먼저 앉아 있다. 의자 하나에 놓을 쿠션을 고르면서 색감의 배색을 노려 두 개를 샀더니 정작 내 앉을자리가 없다.
할아버지는 불에 타 사라진 예배당 자리에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다시 교회를 지었다. 그 시골교회가 몇 해 전 건립 100주년을 맞았다. 이렇듯 나는 긴 세월 믿음의 역사가 이어져 온 집안의 딸이다. 아마도 내가 앞으로 금강경을 읽을 일은 없을 것이다. 종교에 대한 배척, 뭐 이런 건 아니고 그저 나의 성장 배경이나 환경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금강경 별기를 머리 아프게 뜻을 헤아리고 눈 아프게 정독 중이다. 내 자리를 차지한 쿠션 두 개와 자리 경쟁을 해 가면서.
참 대중없는 삶이다.
돌이켜보면 뭔가를 자꾸 따지는 계산적인 삶이 싫었다. 그것이 계산 없이 사는 것과는 분명 다를 터인데, 어쩐지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도 마음 하나 편한 걸 보니 제대로 대책 없는 삶을 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