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없는 첫날 스케치

by 오이향

영,

그녀를 보내고 난 첫 출근날 아침, 드럽게 춥다.

건강을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한 지 10년 차,

차를 가져갈까? 하는 유혹이 들 정도로 춥다.

정신을 차리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춥긴 추운가 보다.

좀체 자리에 앉지 않을 법한 나이, 남중생 5명.

정류장 따뜻한 벤치를 빈틈없이 점거하고 촘촘히도 앉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추위는 한층 더해진다.


버스에서 내렸더니 건널목 신호가 점멸하며 건널 생각 말라며 엄중히 경고한다.

다음 신호까지 오롯이 기다린다.

철길 위로 놓인 육교도 건너야 한다.

바람이 심해선지 그 위로 떨어진 낙엽이 오늘따라 더 말라비틀어져 수북하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낙엽을 피해 요리조리 계단을 오른다.


두 번째 건널목 신호를 만났다. 이 놈도 만만치 않다.

오늘은 신호 타이밍도 드럽게 안 맞는 편이다.


영과는 20대 풋풋한 시절에 직장에서 만났다.

친구인 듯 언니인 듯 매력적인 동료인 듯 지냈다.

서로 어울려 일도 하고 고민도 했지만 누군가를 뒤에서 욕도 했다. 대체로 직장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직장을 벗어날 궁리까지도 함께.

계획이라곤 어느 시골로 들어가 팽이버섯을 키우자는 허황된 꿈으로 실행하진 못했다.


서로에게 의지도 했지만 순간순간 실망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세월이 흘러 이젠 버젓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우린 너무 안 맞아!"라며 웃는다.

그런 그녀가 직장을 나갔다. 자력이 아닌 시간의 힘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남았다.


그녀가 나가고 없는 직장으로 출근하는 첫날.

유독 춥고, 중학생도, 신호등도, 심지어 떨어진 낙엽마저도 나에게 팍팍하게 군다.


생각해 보면 앞에서 말했듯 영과 나는 영혼의 단짝은 아니다. 성향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의 젊은 시절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녀의 떠남은 나의 한 시대를 끊어내는 일이기도 하기에.


전방위로 시비 걸고 나 헛헛하다고 푸념이라도 하며

오늘 하루는 그녀를 이렇게 마음껏 추억하고 싶다.

그러기에 충분한 우리들이었기에.

하루라도 충분히..... 그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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