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 Your Shelter!
한동안 내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던 문장이 있다.
"Find Your Shelter."
나른한 주말 처음 가보는 동네 카페에서 우연히 보았던 문구다.
카페를 구경하다 이곳저곳 문구가 쓰인 스티커를 볼 수 있었다.
자꾸 보다 보니 여러 생각이 지나갔고 카페에 나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마음속을 떠다녔다.
당신의 피난처를 찾아라.
"재난 상황이나 위험, 고통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 피난처"
문구를 보며 "살아가다 부딪히는 위험과 고통에서 나의 피난처는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언제부터 나는 삶의 피난처를 찾아다녔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새로운 피난처로 도피하게 된 순간은 더 이상 쉽게 울지 않았을 때부터 인 것 같다.
정말 어린아이였을 때 넘어져 무릎이 까지거나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등 크고 작은 일에서 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때마다 문제는 해결되거나 잊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운다는 것은 더 이상 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나의 피난처는 잠이었다.
걱정이 많았던 어린 시절, 깨어있는 것은 고통이었다.
걱정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었고 나를 낭떠러지로 밀고 들어갔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불안감은 나를 집어삼켰다.
그 당시 나에게 슬픔과 아픔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잠을 자는 것이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어떠한 생각과 고통도 더 이상 나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면하는 순간 고통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 잠 말고는 어떠한 피난처를 찾을 수 없었다.
잠을 자는 것 만이 나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 한창 설렘이 가득했던 시기,
다른 아이들이 밖으로 나갈 때 나는 방안 한구석에 조용히 박혀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잠을 자거나 누워서 천장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도 마주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무서웠고 힘들었다.
결국에는 군대로 도피를 했다.
군대에 합격했던 순간은 20살 인생 중 가장 기뻤던 날이다.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는 것이 아닌 군대에 간다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군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는 못했다.
많은 것들이 어려웠고 힘들었다.
유일한 피난처였던 잠으로 도망가는 것도 이제는 할 수 없었다.
규칙적인 생활이 강조되는 군대에서 자고 싶을 때 잠을 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속에 슬픔과 아픔이 쌓이고 굳어져 여기저기 벽을 만들었다.
나는 그 벽들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이런 모습으로 군 생활을 계속하지는 않았다.
어느 한순간 내 마음에 쌓여있던 벽이 부서져 내 마음속에서 내보내졌다.
그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슬픔에 온전히 내 몸을 맡기고 울었다는 것이다.
나는 생활관 텅 빈 복도 끝 가장 어두운 곳에서 숨죽여 펑펑 울었다.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한없이 울었다.
시간 모르게 울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나를 가두었던 슬픔이 눈물에 떠밀려 사라졌다.
그 이후부터 잠이 아닌 다른 피난처를 찾아다녔고 마음에 슬픔을 피할 장소를 만들었다.
점차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만났고 운동을 하며 조금씩 좋아지는 체력을 보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끔씩 주말에는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다니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
늦은 저녁 집에서 나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밤이 주는 평온함을 마음에 담았다.
그 외에도 나는 마음속에 더 이상 슬픔이라는 벽이 생길 땅을 주지 않기 위해 계속 피난처를 만들었다.
마음속 슬픔이 가득 차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슬픔에 몸을 온전히 맡기는 것도 좋다.
슬픔을 부정하고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야, 이 정도로 울지 않아"라고 하기보다 가끔씩은 하염없이 어린아이처럼 울자.
나의 눈물이 파도가 되어 내 마음에 가득 찬 슬픔이나 나를 가두었던 벽을 쓸어갈 수 있도록 하자.
그다음 눈물에 씻겨 고요한 평야만이 남은 나의 마음에 나만의 피난처를 하나 둘 만들어 채우고 슬픔이 벽을 쌓아 나를 가두지 못하게 하자.
가끔씩은 울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