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만들어 두겠소
올해 12월은 비교적 따뜻한 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날씨는 거뜬하지"라는 자만심으로 생활하다 감기에 걸렸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그동안 쓰지 않았던 마스크를 급하게 구매해 쓸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를 쓰자마자 이질적인 냄새가 느껴졌다.
병원에서 맡았던 소독약 냄새가 코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 냄새는 내 안 속 깊숙이 파 들어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2020년 팬데믹의 시기 처음 마스크를 써보았던 그날의 기억
마스크를 쓰는 동안 잊어버렸던 옛 기억을 끝없이 끄집어내어 계속해서 곱씹었다.
수많은 추억과 감정이 마음속을 교차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맴돌았던 건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그리운 순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천차만별이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행복했던 순간보다 사람에게 부족했던 순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를 힘들어했다.
소심했던 성격도 한몫을 했지만 특히나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들이 하는 일상의 대화조차도 나에겐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나름대로의 엄청난 각오를 하고 대화에 임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나를 뒤덮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것을 보면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부터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다 보니 그저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많았다.
그 당시에는 지나가는 인연에 대해서 크게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평소처럼 잊히면 그만이겠거니 하며 붙잡으려는 큰 노력 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놓치기 아쉬운, 조금이라도 더 얘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그렇지 뭐"하며 마음을 놓았다.
그렇기에 나의 인간관계의 폭은 매우 좁다. 지인의 대부분이 먼저 다가와주고 곁에 있어준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고 점차 나이를 먹을수록 이제는 내가 먼저 말을 붙인다거나 연락을 하려 한다.
얼굴에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던 주름이나 주근깨가 하나 둘 생기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그동안 없던 넉살이 점차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고 터를 잡기 시작했나 보다.
이왕 변할 거 조금이라도 빨리 변할 걸 하며 약간의 후회가 스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전의 나와 그 사람이었기에 아쉬운 것이고 그리운 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처럼 조금이라도 능청스럽고 아저씨가 된 모습으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와는 달라졌겠지만 과연 그 순간이 의미가 있을까? 재미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제는 그냥 그대로 남기려 한다.
아쉬운 순간은 아쉬운 대로 그리운 순간은 그리운 대로 단지 그날의 순간과 그 사람을 잊어버리지는 않도록
스쳐 지나가버렸던 인연을 마음에 간직하며 앞으로 만날 인연을 위해 문을 만들어두려 한다.
누구든 언제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커다란 문과 넓은 마음의 방을 준비해 두고 실컷 함께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