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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Mar 12. 2019

어느 질풍노동자의 고백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일했으니 어느덧 그렇게 됐다. 누군가 내게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나는 여전히 뜸을 들인다. 내 명함은 오래전부터 나를 '디자이너'라 정의하지만 그것을 발음하기가 어쩐지 송구스럽다.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다녔던 첫 직장에서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 '이거라도 해야지'라는 심정으로, 그 일을 그만두고 1년을 쉬다 만난 두 번째 직장에서는 '제가 하는 일이 디자인만은 아니거든요'라는 자세로 일했다. 작은 회사가 쑥쑥 커가는 모습이 마냥 신기해 사업 자체에 심취했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일하느라 소홀했던 학교 수업에서도, 하루하루 매출을 올리기 바쁜 회사에서도 디자인 본질에 대해 진중한 물음을 하지 못했다.

 세 번째 직장에 다다르자 미루고 외면해온 오랜 갈증이 사막의 형상으로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추는 모래사막이 아니라 바닥이 쩍쩍 갈라져 메마른 사막이었다. 사막이라니, 그 즐겁고 숭고한 업을 어째서 고통스럽게 표현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아. 숨쉬기가 힘들었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아시스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났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저 달렸다. 디자인에 대한 탐구와 창작으로 스스로를 입증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갈증을 느끼는 만큼 걷고 뛰기를 반복한 것이다. 덕분에 훌륭한 디자이너는 못 되었어도 건강한 인간은 될 수 있었다.




 "직업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이제 사절한다. 대신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을 해 주시길. 이제부터 그것에 대한 답변을 이곳에 써보려 한다. 질풍노동자의 생존법이었던 달리기와 요가, 서핑에 대한 이야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몸과 대화 나누며 스스로 살아있음을 깨달았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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